‘반핵’ 구속자·부상자들이 바라보는 선거

분노와 화를 표현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범법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방화미수, 특수공무집행 방해, 폭력 행위, 명예 훼손 등 ‘죄명’은 언뜻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죄’는 온전히 국가 책임입니다. ‘국가 난제 해결’이라는 미명하에 비민주적 관행을 못 버린 정부와 그 지원을 받은 군수가 핵 위험 시설물을 유치하려 했던 것에 반대 의사를 가졌던 것이 원죄라면 원죄입니다. 본지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소외될지도 모를 이들을 찾았습니다. - 편집자 주

지난 20일 저녁 반핵 구속자와 부상자들이 모여 가슴에 묻어 두었던 지방선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관, 이갑영, 이상공, 송명갑, 변영배, 신권 씨.

전화하던 후보자 투표권 없다고 하니 연락 끊어

반대투쟁 과정에서 45명의 구속자를 포함해 수백 명의 군민이 사법처리 되었으며 또한 수백명의 군민들이 부상 당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이상공, 변영배, 신권, 송명갑, 이갑영, 김종관 씨 등 여섯 분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분들 중에 변영배, 이갑영, 김종관 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이 없습니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신권, 이상공, 변영배 씨는 지난 19일부터 “사면복권과 보상 치유”를 내걸고 읍내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변영배 씨는 “내 한표로 김군수 재선을 막고 싶지만 표가 없으니 가족들이라도 지지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라며 답답하고 다급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이갑영 씨의 얼굴도 그리 밝지는 못했습니다.

김종관 씨는 이번 선거판에서 새삼 야속한 현실을 접하게 됐습니다. 출마한 어떤 후보가 계속 도움을 달라고 하길래 “투표권이 없다”고 했더니 전화를 끊고 그 다음부터는 연락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보다 더한 유권자의 설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인 데를 다시 한 번 차인 격 아닙니까. 모두들 자신을 범법자로 만든 사태의 책임자는 “후보 자격이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대체로 “고생을 같이 한 사람”으로 지지 후보를 정하는데 큰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비록 투표권이 없다해도 말입니다. 마음이 쏠리는 쪽이 있는 모양입니다.

대책위 지도부 여당 입당에 이용당했다는 생각 들기도

돌이켜보면 속 쓰린 일이 하나 둘 아니었습니다. 정부에 사면복권과 피해보상에 대한 요구를 해봤자 무응답 신호만 깜빡였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대책위가 해산된 뒤에는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의지할 데라곤 없었습니다. 길어지는 재판에 소송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몇 백만원 짜리 벌금형은 빚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열 받고 속상 했던 일은 대책위의 ‘배신’이었습니다. 변씨는 “정부와의 싸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사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책위가 해산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도부 일부의 열린우리당 입당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김종관 씨는 특히 이 문제에 신경이 날카로웠습니다. 김씨는 “우리는 그들의 도구였고 군민들은 정치와 선거에 이용당한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신권 씨는 “지금이라도 자신들이 왜 여당을 택했고 집행부를 해산시켰는지 해명이나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부안군민회의의 힘이 약한 원인도 여기에 연관시켰습니다. 소위 그들 ‘우리당 입당파’들 때문에 군민들 사이에 운동의 진실성에 대한 불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 ‘그놈’이 그놈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군민화합은 핵 시설물 유치 반대 선언에서부터

이번 선거에서 69명의 모든 후보가 화합을 말하고 있어 대표적 피해자인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 물어봤습니다. 이상공 씨는 “산 좋고 물 좋은 부안이 (핵폐기장 사태로) 황폐해졌다”며 “나무를 새로 심고 숲을 우거지게 하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송명갑 씨는 “화합시킬 수 있는 군수가 우선”이라며 소박해 보이지만 의미 깊은 화두를 던집니다.

신권 씨는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강경합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핵폐기장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신씨는 화합을 위해 “차기 군수가 핵 시설물 일체를 부안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다음 사면복권과 피해 보상에도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개발욕구 앞세운 후보들은 안돼…누가 되든 잘못하면 가만 안둬

이갑영 씨는 부안 사태의 원인을 군정 책임자의 개발 욕심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모두 살기 좋은 부안 잘사는 부안을 만들겠다며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우리가 잘산다고 하는 의미는 농사를 잘 짓고 가격을 제대로 받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며 생활경제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개발과 건설’에는 선을 분명히 그었습니다. 그는 특히 친환경농업에 관심이 많아 본지에 기획보도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지지 후보 당선을 위해 적극적인 변영배 씨는 “누가 군수로 되든 잘못하면 다시 끌어내릴 것”이라고 말해 주민소환제가 도입된 데다 만만찮은 강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차기 군정 책임자가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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