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세월, 새부안 디딤돌... 군민들이 결정할 몫이다

한 달 전쯤 성당에서 가까운 누이들이 진달래 화전을 부쳐, 반갑고도 맛나게 몇 점 얻어먹은 적이 있다. 어려서 뒷동산에 올라 바로 따서 먹어가며, 행여 연하디 연한 꽃이 망가질까봐 조심조심 땄다. 가족이 함께 꽃잎을 씻어가며, 찹쌀 반죽을 하며 정겹게 만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얼마나 맛있던지. 진달래 화전 몇 점에 봄기운을 온 몸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진달래를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이른 봄 야트막한 야산에 외로이 피어있는 진달래의, 화려하지도 뻔뻔하지도 않은 수줍은 자태에서 왠지 누이 같은 청아함이 느껴진다. 진달래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한(恨), 외로움, 지리산, 4·19 그리고 광주…’ 이팔청춘 때는 최루탄 냄새 배어있는 학교 동산에서 진달래를 벗 삼아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단맛이 나는 진달래는 참꽃이라 했고, 비슷하게 생겼으나 독이 있어 먹지 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 불렀다. 붉고, 희고, 분홍으로 색도 여럿이며 무리 짓고 피어 온 산을 뒤덮는 철쭉은 지역 축제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진달래가 주는 감흥을 가지지는 못한다. 모습은 비슷하지만 이렇듯 느낌에서나 효용에서 정반대인 꽃도 없을 것이다.

이제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대지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인간 세상은 온통 기만과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논밭마다 모내기와 고추심기로 분주하다. 하지만 농민들의 표정은 예전과 다르다. 일 년 농사를 시작하는 이 때, 활기차고 희망으로 가득차기 보다는 쌀값 걱정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무겁기만 하다.

평택 대추리에서는 모두의 걱정대로 유혈 진압이 벌어지고 말았다. 군인과 경찰, 용역직원이 총동원되어 씨를 뿌린 논을 망가뜨리고, 지역주민과 수많은 이들에게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무자비한 인간사냥과 뒤이은 대량 구속은 마치 역사의 시간을 26년 전으로 되돌린 듯하다. 부안에서 경주와 군산으로, 평택까지 이어지는 야만의 정치에 몸서리가 쳐진다. 미국의 이해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 ‘참여정부’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봄 날씨도 이상스럽다. ‘사랑은 봄비처럼…’이라는 노래가사처럼 정겹게 어깨를 적셔주기보다는 장맛비처럼 쏟아 붇고 있다. 방조제가 막힌 뒤 내린 많은 비에 벌써 새만금의 생합과 게들은 갯벌 바깥으로 튀어나와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많은 정치인이 새만금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우며 정치적인 생명을 이어가려 한다. 이번 선거가 대통령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헷갈린다. 지방의원으로서 부안과 전북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책임지지 못할 국책사업과 화려한 선언만이 난무하고 있다.

더욱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부안의 아픔’을 일으켰던, 군민들에게 2년여 동안 피와 눈물의 세월을 불러왔던 장본인들이 또다시 그 뻔뻔스러운 얼굴을 들고 표를 구하러 다닌다는 사실이다. 뱀 혀를 낼름거리며 ‘잘 해 보려고 하다보니…’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이 피를 흘릴 때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부안의 미래를, 주민 화합을 이야기하며 표를 구걸하고 다닌다. 가증스럽기 조차하다.

대의민주제라는 형식으로 치러지는 선거는 이러한 맹점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주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직 ‘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표’를 얻으면, 그것이 면죄부가 되고, 또다시 주민들 위에서 군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앞으로 4년뿐만이 아니라 부안의 미래를 결정짓는 농사이다. 또다시 분노의 세월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부안을 만들어 나갈 디딤돌을 놓을 것인가?

이러한 결정은 우리 모든 부안 군민들의 몫이다. 혹시라도 철쭉을 진달래와 구별 못하고 화전을 부쳐 독을 먹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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