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에 바란다] 어민에게 듣는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어 주쇼. 글케 못하것으면 실지 말고”
“그리고 말해 뭣해, 누가 되도 다 똑같애”

하늘과 바다를 보고 살아온 이들에게 사람의 일이란 매번 날아들지만 고개 돌리면 기억나지 않는 갈매기와 다를 게 없다. 바다가 먹여 살린 이들. 바다와 어부. 둘 사이에 사람이 끼어 들었다. 어민들에게 무엇을 듣겠다고 무엇을 물었던가. 그들에겐 투표라는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것이 아니다. 번거롭고 쓸모없다. 선거라고… 보거나 듣다보면 화만 난다. “예끼 너나 가져라”

격포를 지나 봉화봉과 사투봉 사이를 넘어 궁항에서 어민을 만났다. 궁항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다. 합구와 송포, 곰소에서도 바다에 기대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누굴 뽑아놔야 소용없다”고 말했다. 선거 무용론도 등장한다. “누구를 뽑아도 우릴 위해 뭘 하겠느냐, 다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지” 불신이다.

궁항에서 어민 신상돈(50·궁항)씨를 만났다.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하느냐 물었더니 대뜸 “할 말 없소”한다. 잠시 뒤 머쓱해진 기자를 달래기라도 하는 듯 긴 말 문을 열었다. “인물은 잘 모르겠고 일 잘하는 사람 뽑으면 되겠지. 누가 일 잘할지 하늘이나 알라나 모르겠네” 공식화된 답이다. 어민뿐 아니라 누구에게 물어도 똑같은 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란 ‘딴소리한뜻’의 답도 있다.

신씨는 어민들의 실정을 듣고, 알고 있는 자가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 끝나고 나선 물고기가 안잡혀. 이러다 어민들 다 굶는다구. 물고기가 산란할라치면 낮은 물가로 나와야 하는데 새만금을 딱 막아노니 어디가서 알을 까냐구. 어쩌면 지금은 그나마 나을지도 몰라. 2,3년후에는 물고기 씨도 못볼참이여”

그러니 더더욱 선거에 신경써야 한다고 했더니 “누가 되든 뭘 어쩔거냐구. 그네들이 물고기를 잡아다 줄 것이여, 아니면 돈을 쥐어 줄 것이여”

없는 희망을 굳이 얘기하진 않는다. “기름값도 안나오니 물에 나가기도 겁이 나. 한번 나가 5만원이든 10만원든 벌어봐야 기름넣고 나면 땡이야”

“어민들을 위해 뭘 해야 하냐고 물으니까 하는 얘긴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어민들 어떻게 사는지 봐야해. 물고기는 잡히는지, 방파제는 어떤지, 봄에는 뭘 잡고, 여름에는 뭘 잡는지”

궁항을 나오자 황사를 안은 바람이 거세다. 합구를 지나는 길에 마을을 흘깃 보자 화려한 색깔 천을 매단 부표가 마을을 색동옷 입은 아이마냥 불그레 만들었다.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르다.

어민들의 대부분은 생계가 걸린 그들의 일이 예전같지 않아 맘고생이 심하다. 새만금 탓일 터인데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자신의 배에 넣을 기름값만 오른 것이 아니니 이 역시 누굴 보고 한탄할 수도 없다.

설문조사한다고 전화오면 버럭 소리치고 끊기 바쁜 봄날의 어민들. 기자의 버릇없는 ‘사적인 물음’이 괘씸했을 것이다.

“그 놈이 그 놈이야”
하얀 머리카락에서 먼지바람을 털어내던 한 할아버지의 구름같은 말 한마디가 기자의 발 앞에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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