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사탕과 간교한 말에 놀아나 가산 탕진하는 4년을 맞을 순 없어

얼마 전, 또 한 차례 이사를 했다. 마지막 이사가 될까? 결혼 후 분가하여 10여년 이곳 저 곳을 떠돌다가 이번엔 마음먹고 내 집까지 장만한 터이다.

큰 아이 전학 일로 새 학교 가는 날. 하필이면 장날이라더니, 부슬비 부슬부슬 아침부터 날이 궂다. 차타고 가자 조르는 걸 억지로 우겨서 우산 쓰고 걸었다. 담 넘어 살구꽃, 밭두렁의 민들레에게도 첫 인사해야 하지 않겠냐며. 내키지 않은 발걸음 인지라 작은 놈은 양말이 젖었네 다리가 아프네 하며 벌써부터 투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길 옆에 따라 붙어 있는 사람 다니는 길이 무슨 공사를 하는지 파 헤쳐져 있어 걷기조차 사납다. 이래저래 첫 학교 가는 길의 인상이 자꾸 구겨진다.

학교 가는 길만이 아니다. 부안은 지금 어디나 그야말로 ‘공사중’이다. 몇년치 일거리를 한꺼번에 벌여놓은 느낌이다. 급하게 기공식을 치른 채 ‘개업휴업’인 곳, 보기에 문제없을 것 같은 도로를 굳이 반듯하게 잡아야 한다며 산허리를 잘라놓은 곳, 무슨무슨 거리, 어디어디 하천 정비사업 등등. 공사가 있는 곳이면 그를 선전하는 간판 또한 특별히 도드라져 보인다.

아하! 이런 걸 바로 ‘전시행정’이라 하는 건가? 선거 때가 되니 구겨 접힌 이미지를 어떻게든 뒤집어 펴고 싶은 마음에 말 안 듣는 머슴은 자꾸 잔꾀를 부리는가 보다.

변산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농사꾼 부모들이 돈을 모아 아이들의 학교급식에 유기농 쌀을 쓸 수 있도록 했다 한다. 더구나 이 일에는 멀리 서울에 있는 유통단체까지 거들고 나섰다는데, 정작 관심을 두어야 할 군과 지역행정에서는 모르쇠하며 엉뚱한 데로만 눈을 돌리고 있으니 행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부안군의 재정자립도는 13.3%로 가난한 살림이다. 쓰고자 덤비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돈이지만, 군색한 살림을 그나마 꾸려나가자면 꼭 써야할 곳에 먼저 풀어 놓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치적 중심의 예산 운영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으레껏 살림을 맡겠다고 나서는 자들마다 산을 깎고 들을 메우는 ‘개발’에만 눈을 두고 매달리게 되니 이 사회의 큰 병통이 아닐 수 없다.

군정 살림이 내 살림이라면 어떻게 할까? 기둥뿌리가 뽑혀도, 전답을 팔아서라도 등록금과 학원비를 마련하는 게 대한민국의 부모다. 물론 지나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교육은 한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는 먼 미래의 일. 안타깝게도 그 미래에 크게 마음 쓰는 머슴도 주인도 없는 듯하다. 머슴이야 어차피 제 것이 아니니 아무렇게나 헤프게 퍼 낼 수도 있다지만, 주인마저 머슴의 그런 버릇을 고쳐 잡으려 하지 않는다면 집안 망하는 것이야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핵폐기장 싸움 때 목청 높여 외쳤던 말들이 생각난다. 그 중 하나. 군민이 주인이요 높은 관청에 앉은 자가 종이라 하였다. 그것은 우리들끼리만 하는 억지 주장이 아니라 이맘 때 쯤이면 그 ‘종’ 되고자 하는 자들이 늘상 되뇌이곤 하는 ‘구호’다.

사실이야 어찌되었건, ‘내’가 제대로 된 주인이요 ‘그’를 머슴답게 부리려면 주인의 지혜와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 머슴들이 내미는 달콤한 ‘사탕’과 간교한 말솜씨에 놀아나 또 다시 가산을 탕진하는 4년을 맞게 된다면 우리는 헤어날 길 없는 수렁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상한 시국에 우리는 서로가 꿈꾸는 부안을 꾸밈없이 이야기 하며 그 꿈들을 큰 얼개로 엮는 이른바 ‘공론(公論)’을 모아내는 일이 절실하다고 본다. 누구를 지지하는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내가 꿈꾸는 부안은 낙락장송 곧게 늘어선 십자대로(十字大路)에 휘황찬란하게 눈부신 밤 풍경만이 아니다. 길은 굽어도 좋으며 밤이 어두워도 좋다. 다만 철 따라 마음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고, 굽은 길모퉁이 마다 정을 나눌 이웃이 살며, 군불 지펴놓은 아랫목에 아이들과 나란히 두 발 뻗고 누워 별나라 이야기로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이상을 누리려는 것은 내게는 사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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