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으로 조개 사라진 고향 서산의 교훈
신문에 주꾸미 축제 이야기가 한창이다. 맛있는 주꾸미 샤브샤브에, 매운 주꾸미 볶음에, 알이 통통하게 오른 주꾸미 생각만 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주꾸미는 오징어나 낙지보다 더 야들야들하고 작아서 한입에 먹기 좋고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훨씬 좋다. 더구나 싸기도 하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앞으로도 서해의 명물인 주꾸미를 남해의 낙지와 동해의 오징어보다 더 싸고 맛좋게 계속 먹을 수 있을까?
필자의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이다. 어렸을 때부터 살조개, 주꾸미, 갑오징어, 골뱅이나 소라같은 해산물을 늘 먹고 자랐고,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집에 생선이 떨어진 적이 별로 없었다. 여름이면 바닷가에 놀러가서 조개를 캐고 모래장난을 하며 놀았다.
어렸을때만 해도 지천이 조개여서 시장어귀에서 살짝 데친 살조개 한 바가지 사면 실컷 먹을수 있었다. 맛있기도 했고…. 바지락은 너무 흔해 잘 먹지 않을 정도였다. 바위틈에 달라붙어 있는 굴을 까고 농게, 칠게를 잡아 간장에 담궈먹기도 했다. 물론 고기보다 훨씬 값이 싸고 맛이좋아 해산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먹을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억도 못하는 어릴적 서산 앞바다는 AB지구 간척으로 메워졌고 배를 가라앉혀 이었다는 방조제는 서산의 명물이 되었다. 안면도는 다리로 이어졌고 소규모 간척은 끊임없이 이어져 갯벌은 점차 사라졌다. 점차 조개는 값이 비싸졌고 아버지는 낚시를 즐기러 점점 멀리 나가야 했다.
근처에서 조개를 캐고 굴을 까서 겨우내 가용을 쓰시던 당숙모들과 친척 아주머니들은 부업이 없어져 1㎏을 열심히 까야 겨우 100원을 벌수 있었던 마늘을 까게 되었고 벌이는 훨씬 줄어들었다.
방조제가 세워지고 토사가 방조제 너머에 다시 쌓이면서 15년 전쯤 반짝 새조개가 서산인근 바다에서 풍성하게 났었다. 그때, 새조개는 오염된 바다의 마지막 선물이고 다시는 조개를 먹을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가 어른들 사이에 떠다녔다. 바다가 오염되면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조개가 바로 새조개라고…. 물론 그 이후로 더 이상 맛있는 조개를 싸게 먹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서산 앞바다에는 바지락도, 살조개도, 새조개도 난다. 다만 아주 드물게 잡혀 값이 예전에 비해 10배이상 뛰었을 뿐이다. 이제는 아무도 해산물이 고기보다 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조개 한근이 8천원을 호가하고 대합 서너개가 만원을 넘으니 말이다.
이제 바닷가에는 조개와 고기를 잡는 어민들보다는 관광객에 기대 사는 외지인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바닷가에 들어와 관광객을 부르고 있지만 요즘 서해로 놀러가는 사람이 어디 그리 많은가? 1년내 사람없는 빈집이 허다하다.
몇 십년을 열심히 농사지은 현대 아산의 간척지는 채산도 맞지 않고 맛도 없다며 쌀농사를 관두고 기업도시를 세우겠다하고, 간척 후 논을 보상받지 못했던 어민들은 이제와 땅을 요구하고 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서산은 감칠맛이 도는 비싼 물고기와 비싼 해물이 가득했던 바다를 점차 잃고 바다를 포기한 댓가로 얻었던 잠깐의 농사도 잃고 있다.
철새들이 날아들던 천수만도 농사를 포기하면서 잃게 될테고 근처 공군기지에서 날아드는 비행기소리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19일 새만금에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다녀왔다. 친정이 서산이지만 부안의 해창갯벌에서 맨처음 바다를 보았고 파도를 느꼈던 아들은 지난번 다녀왔던 그 바다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서산의 전철을 밟게 될까, 아니 규모가 큰 만큼 훨씬 더 나쁘게 진행될 부안의 미래가 걱정되고 두렵다. 부안의 맛있던 조개와 주꾸미가 지금 내 아들이 자라 성인이 될 때쯤엔 까마득한 추억속에서나 존재할까 그것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