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창에 매향비 묻던 그때부터 현재까지...갈 길은 하나뿐

어느덧 8년이 되었다.

새만금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해창의 새만금전시관 담벼락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은둔의 길을 떠났고, 항상 의지가 됐던 형은 큰 병을 얻어 드러누워 버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요즘 만나기 힘든 건강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많은 손가락질과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쓰디쓴 소주 한 잔에 빙그레 웃음 지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진 이들이었다.

온통 새만금 조기완공의 깃발만이 나부낄 때 “이건 아니야! 크게 잘못되고 있어!”라며, 부안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음을 알리고 기꺼이 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민들과 뭇 생명들의 이웃이 되고자 하였다.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았듯이 후대에 물려줄 갯벌이 보전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비를 세우며 해창 다리에서 서북쪽 300걸음 갯벌에 매향합니다.”

해창에 서있는 매향비의 전문이다.

2000년 1월 30일 해창 갯벌에 침향을 묻고 매향비를 세우던 날은 얼마나 춥고 눈보라가 치던 지…. 그 이후 새만금 행사가 있을 때 마다 날씨가 협조를 해주지 않는 징크스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해 3월에는 ‘바다로 간 장승’ 수십 개를 갯벌에 심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정치권이 새만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될 것이라는 국민적 여론이 만들어졌다. 작은 불씨는 들불이 되어 번져 나갔고, 하나 둘 씩 새만금 지킴이를 자임하며 모여 들었다.

그런데도 지역 언론은 입을 모아 ‘전북 발전의 유일한 대안 - 새만금’을 앵무새처럼 외쳐 댔다. 그리고 장밋빛 환상을 심기에 분주했다. 주위의 분들도 ‘문제가 있기는 한데…벌써 공사가 저만큼 진행되었으니…하려면 처음부터 반대를 했어야지…’ 혹은 보상 문제에 온통 눈과 귀가 쏠려 있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너무 늦었다는 핑계를 늘어놓고 오히려 탓하기까지 한다.

전북 도지사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었다. 때로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반미치광이가 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방조제는 계속 자라 나갔고, 이제 2.7km만이 남아 새만금 갯벌은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논이 잠기기 일쑤고, 그 유역은 넓어져만 가는데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 멀쩡한 논들이 상습침수지역이 되어도 새만금이 빨리 끝나야 해결이 된다니 미칠 노릇이다.

지난 시절 전북 정치인들이 3조5천 억짜리 새만금에 올인하는 동안에 전남은 S프로젝트다, J프로젝트다 하면서 80조의 서·남해안 개발비를 따내고 있다. 도대체 지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어민들을 수대에 걸친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아내는 댓가가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부러워하는 천혜의 자원을 온통 파헤쳐 못쓰게 만들면서, 수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짓으로 무슨 발전을 얼마나 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은 비록 새만금이 정치인들의 더러운 협잡과 탐욕에 눈이 먼 개발업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혀지고 더러워진다한들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지켜질 수밖에 없다. 다만 세상을 다시금 되돌리기 위한 이들의 더 많은 눈물과 고통이 필요할 따름이다.

다시금 자리잡은 농성장에는 여전히 눈보라와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이 몸서리치게 그립다.

그러나 벗들이여! 이제는 우리가 가야할 때다.

신부님의 자리에 어민이, 스님 자리에 농민이, 교무님 자리에는 여성이, 목사님과 함께 백합과 망둥이가 십자가를 쥐고 가자. 다시한번 이기심과 탐욕과 게으름을 반성하며 땅에 입 맞추도록 하자.

‘너도 살고 나도 살고 갯벌도 살고 전북도 사는’ 그리하여 모두가 새로운 생명과 평화의 세상으로 거듭나는 부활의 한마당을 벌여보자. 떠난 친구도 돌아오고, 아픈 형도 툭툭 털고 일어나고, 더 이상 눈물바람 없는….

그런 세상에 어서들 오시구려! 우리 모두 마중물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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