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서자’에서 ‘핵종규’ 거쳐 퇴진 위기까지

지난 16일 산자부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관련 발표’가 430여일간 방폐장 유치에 정치적 생명을 걸다시피한 김종규 군수를 위기로 몰아 넣고 있다.

군정 파행이 2년을 넘기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자신만의 ‘독선과 아집’으로 주민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야욕의 정치인이자 초보 행정가인 김 군수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써 군정 위기의 한 단면에 접근하고자 한다.

쿠데타 세력과 맞잡은 손, 깜짝쇼와 사조직으로 군청 입성

대학 졸업후 전주에서 교직을 잡고 있던 김 군수의 정치 입문은 공식적으로는 1993년 민자당 부안군 지구당 위원장인 고명승씨와의 인연을 통해 이뤄졌다. 고씨가 누구던가. 12·12 사태 당시 총리 공관 불법 점거를 지휘한 쿠데타 세력으로 6·10 항쟁 당시 보안사령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가 고씨의 보좌역으로 정치 인생을 출발한 것은 고씨와 김 군수 친형 사이의 학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씨 밑에서 일종의 ‘정치적 유아기’를 보낸 후 독립을 꿈꾸며 95년 전북도의원에 이어 98년 부안군수에 출마했으나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무엇보다도 정치지망생으로서 김 군수의 출발부터가 국민회의에서 민주당으로 이어진 호남 정계의 주류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김 군수 스스로도 지역 정서와 동떨어진 ‘출신 성분’에 대한 열등감을 쉽게 떨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지역내 ‘정치 서자’로서 좌절을 겪은 그의 야망이 찾아낸 새로운 해법은 사조직의 강화와 깜짝쇼에 가까운 이벤트 기획에 있었다. 그는 낙선 이듬 해인 1999년부터 ‘부안사랑나눔회’를 통해 지지자를 규합하는 동시에 구성애, 정덕희, 황수관 등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인사들을 초청하고 ‘조남철 국수배 제1회 어린이 바둑 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그로서는 나름의 ‘이름값 높이기’ 혹은 ‘군정 수행능력 연출’이었던 셈이다.

2002년 6월 그는 정치입문 9년만에 선출직 군수의 자격으로 부안 군청에 입성한다. 하지만 취임 직후 도내 일부 언론이 파격행보로 보도한 ‘투명 행정’이나 ‘주민 맞춤형 써비스’가 사탕발림과 쇼맨쉽으로 드러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김 군수에게는 대다수 주민의 반대의사와 무관하게 추진하던 ‘고독한 프로젝트’를 선보일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일생 최대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 같은 군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김종규 군수가 위도 주민 설득, 자문교수단 조직, 비밀작업팀 운영 등 방폐장 유치를 목표로 물밑 작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작년 2월초순에서 4월말경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5월경 읍내 기관장급 인사들 사이에서는 “인근 타 지역에 들어서면 부안도 피해 보는 것은 마찬가지니 아예 우리가 유치해야 한다”는 김 군수의 유치 ‘작심’이 전파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5개월여 후인 7월11일 유치 선언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많이 고민했다. 처음에는 방폐장 유치를 원하지 않았다”는 발언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7월14일 유치 신청 이후 주민들의 들끓는 반대 여론과 격렬한 반발 속에서도 김 군수는 자기 미화에 급급했다. 그는 신청에 앞선 군의회 유치 부결안 마저 무시하고 당시 여당 실세인 정균환 전 의원과의 갈등도 불사하며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안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독단적 정책결정을 미화했다.

그는 특히 올해 7월1일 취임 2주년 인터뷰에서 “방폐장과 함께 이뤄질 부안을 발전은 어느 시군도 따라 올 수 없을 것”이라며 실현되지도 않을 자신의 치적 홍보에 분주했다. 또한 “정부가 부안이 방폐장 유치 우선권을 갖고 있고 부안에 방폐장을 설립하는 절차를 예정대로 밟는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유치 신청 2개월여를 앞두고 부안 정리 수순에 들어간 당시 대책위·환경단체와 정부·여당 사이의 합의 기류 조차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김 군수의 일상적 군정활동은 경호상의 이유로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한 집무실은 흉물스런 시위 대비용 컨테이너 박스로 둘러싸여 있다. 한마디로 그는 갇힌 신세다.

그런데 누가 그를 가두어 놓았겠는가. 비판을 외면하고 절차를 무시한 바로 그 자신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기회를 엿보다 깜짝쇼를 벌여온 정치인. 쇼맨쉽이 몸에 밴 그의 대형 이벤트가 불러온 군정 마비의 피해는 고스란히 7만 군민들에게 남아 있다.

지난 16일 부안 반핵대책위는 “‘김종규 퇴진투쟁’이 주민자치의 첫 걸음”이라며 잔여 임기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또한 막대한 지역 예산지원과 방폐장 유치의 빅딜을 꿈꿨던 산자부 마저 ‘부안 주민투표 불가’ 입장으로 ‘한 때의 파트너’인 김 군수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