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오리를 잃어 버린 채 쓸쓸하게 서 있는 동문안 돌 솟대

지난해 되찾은 돌오리, 대보름 다가오는데 설치 안 돼
부안군과 문화재청, 돌오리 위아래 두고 엇갈린 의견
주민들 “부안군이 문화재 훼손하는 바람에 이 지경”

동문안 돌오리가 둥지로 돌아가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돌오리를 기다리던 주민들은 지쳐 화가 났고, 부안군은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으며, 설치의 열쇠를 쥔 문화재청은 여전히 뻣뻣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300년간 부안의 관문을 지킨 동문안 당산 오리 솟대는 1970년 5월 지정문화재가 됐다. 안타깝게도 부안군은 이 당산 솟대의 돌오리를 2003년 도난당했다. 이후 돌오리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부안으로 돌아왔으나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돌오리의 위아래를 두고 어디가 맞느냐는 답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절차까지 복잡하다. 지정문화재인 동문안 솟대는 지자체에서 임의로 다룰 수가 없다. 현재 돌기둥만 서 있는 동문안 솟대에 원래의 돌오리를 올리는 것도 문화재 현상변경신청을 해야만 한다. 이 신청은 부안군이 연구용역을 통해 설치방법을 정하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에 신청 하는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부안군은 지난해 12월 이를 신청했다. 용역을 맡은 회사는 자문위원들의 학술적 견해와 여러 설비를 동원해 동문안 오리 솟대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자문위원들은 민속학자, 박물관장, 전통 대학 총장 등의 경력이 있는 이들이며 연구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의견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으로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가 해당 신청을 승인하면 비로소 설치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신청에 대해 보류를 결정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동문안 오리솟대의 문화재 지정보고서 내용과 부안군 문화재팀의 신청 내용이 돌오리의 위아래에 있어 서로 반대되는 방향을 주장해 판단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입장은 “지정보고서의 내용과 상반되는 형태의 설치를 하려면 그를 뒷받침할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근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부안군 관계자는 “현재 가능한 방법들을 동원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왜 문화재청이 승인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문안 오리솟대의 지정보고서에는 “돌오리는 홈이 아래로 가고, 석주의 상단과 서로 맞물려 설치하도록 돼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지정보고서는 1969년 작성된 것으로 사진이 없이 글로만 적혀 있어 명확하게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한편 주민들은 옛날부터 돌오리의 볼록한 배가 위로 올라가 있었으며, 문화재청이 말하는 방향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이 찍은 이전의 돌오리 사진을 보면 오리의 볼록한 부분이 위로 가도록 설치돼 있다.
부안군과 문화재청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통에 가장 지치고 화난 것은 동문안 주민들이다. 해마다 대보름이면 동문안 당산에 제를 지내오던 인근 주민들은 돌오리가 사라진 2003년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못했다. 그나마 오리를 되찾았으므로 올해 대보름은 무척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올해 정월대보름도 당산제를 지낼 수 없게 돼 주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지금 상황이 다 부안군 탓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동문안 당산제에서 용줄을 감는 등의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진상혁 씨는 “2003년 돌오리가 분실되었을 당시 부안군의 공무원들이 새로 깎은 돌오리를 가져왔는데 그놈을 앉히느라 돌기둥을 깎아 내버렸다”고 말해 부안군이 문화재를 훼손했음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결국 돌오리가 지금의 돌기둥에 바르게 설치될 수가 없다. 진씨는 “부안군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은 알도 못하고 겨우 되찾은 돌오리가 진짜네 가짜네 하는 의심까지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며 더 목소리를 높였다.
동문안 주민들은 오랜 세월동안 당산과 돌오리를 지키고 함께 해 누구보다 돌오리를 잘 아는 이들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부안군과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주민들의 경험과 의견은 무시한다고 여기고 있다. 2003년 당시 부안군은 새로운 돌오리를 얹을 때 주민들에게 묻지도 않고 돌기둥을 깎았다. 되찾은 돌오리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연구 중에도 제대로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뿐만아니라 돌오리를 되찾고 문화재청장까지 참석한 반환식에도 주민들은 제대로 초대받지 못했다.
동중리의 장아무개 주민은 “부안군이 이제 우리한테는 돌오리가 어디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문화재를 보존한답시고 돌오리를 방부처리를 해서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300년이 넘도록 동문안을 지킨 돌오리가 하루아침에 삭아 없어질 것도 아닌데, 순전히 주민들로부터 감추기 위해 핑계를 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부안군이 돌기둥을 훼손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자라 담당 공무원들이 인근 주민들을 외면하고 있어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상혁 씨는 “그냥 돌오리만 저 위에 올려놓으면 되는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대보름마다 당산에 용줄을 감으며 굿을 할 것이고 당산은 지난 300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부안을 지켜왔듯 앞으로도 늘 그럴 것 아니여”라며 아쉬움을 토로했고 “부안군이 잘못을 파악해 인정하고 문화재청도 지금 가능한 설치방법을 찾아서 승인해줘야 할 것”이라며 담당 공무원들이 이제라도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요구했다.
각자의 입장이 여러 갈래로 꼬여 있지만 머지않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관계자는 “부안군이 다시 연구용역을 실시할 수 있도록 이미 용역비를 내렸다”며 “합의점만 찾는다면 올해 안으로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문화재청도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동문안 주민들도 대보름이 지난 뒤 부안군을 찾아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부안군 문화재팀 역시 동문안 당산이 제 모습을 찾은 뒤 주민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당산제 등의 행사를 지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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