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는 일상적인 용어로 쓰일 만큼 다양하게 정의된다. 근대 이후 널리 사용되었고 이제 키치는 특정한 종류의 예술작품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에세이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젖어있는 키치에 대한 개념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키치와의 대립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세계대전 후 대두된 실존주의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예술은 물론 인간의 생활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산업화와 과학이 가져다준 폭발적 생산력은 인간을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켰고 그것을 기회로 부를 축적한 계층은 잉여 시간에서 오는 삶의 공허를 채워줄 도구로 키치를 선택한다.
키치는 예술작품 자체의 문제일 뿐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의 태도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엄격함이나 고상함을 추구하는 고급예술보다는 통속예술에 가까운 키치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위안을 얻는다. 이렇듯 비천한 예술이면서 고급스러움을 가장한다는 점에서 통속예술과 다르고, 고급예술로 보여지길 원하지만 저급한 내용을 지닌다는 점에서 키치는 고급예술과 구분된다. 즉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면서도 무엇인가 의미가 있어 보이는 예술인 것이다.
우리 삶은 많은 통속적인 것에 에워싸여 있다. 먹기 위해 음식이 필요하고, 이동을 위해 차량이 필요하듯이 대중들의 휴식과 손쉬운 쾌락을 위해 예술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사회적인 긴장과 무료한 시간을 해소하기도 한다. 이때 키치의 모든 가치는 소비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도 그 본색은 진지하고 세련된 예술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현대의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키치의 범주는 순수예술의 영역을 넘어 공예, 건축, 영화, TV 프로그램에서 광고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가령, 연신 싸다를 외치는 소셜커머스업체의 촌스러운 광고는 절권도 특유의 기합 소리를 패러디하여 세련된 광고들 사이에서 눈길을 끌었다. 일명 의리남으로 불리는 배우가 의리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광고 역시 음료업체의 매출을 급성장 시켰다. 밀레니엄 세대들에게는 메시지를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전달할 때보다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전달할 때가 훨씬 효과적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전 세계의 음악 팬들을 사로잡으면서 확산된 이른바 B급 문화다. 다소 경박스럽고 저급하지만 유쾌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키치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영화계에서는 상업영화가 주름잡는 키치의 문화구조물 홍수 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같은 진중한 예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계층의 문제를 은유와 상징, 메타 기법의 문학적 상상력에 영상을 입힌 의미 있는 예술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를 볼 때 진정한 예술은 자연을 비롯한 인간이 지니는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부연하여 순수예술이라 할 수 있는 진지한 예술은 대중들이 요구하는 이완과 오락의 재충전이 아니라 새로운 긴장을 요구하는 예술인 것이다. 예를 들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다층적인 후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배면의 풍부한 함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현상을 통해 이면을 보는 통찰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휴식과 긴장 해소로 변질되었던 소비의 자리에 새로운 창조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제 범람하고 있는 현대예술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키치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이다. 창작자로서는 외로움을 감당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고, 감상자에게는 혜안과 통찰의 자세가 요구된다. 겨울 같지 않은 이 겨울,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에서 순수와 통속 또는 대중성의 이면적 진실은 무엇인지 물음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영숙
부안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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