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 변산반도에는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소담스럽게 내렸었다. 쨍하도록 시린 하늘을 이고 있는 내변산 능선은 눈이 부셨고, 눈꽃이 켜로 앉은 나뭇가지들은 문득 장끼가 날아오르면 후드득 떡가루를 흩날리곤 했더랬다.
올해는 눈 구경을 아직 못했다. 변산반도가 한겨울에 이불도 없이 속살 그대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대한을 꽁꽁 얼려버렸다는 소한에도 겨울비만 하염없이 내리는가 하면, 서리가 닿지 않는 남쪽 처마 밑에는 풀들이 여태도 자라고 있다. 상록초常綠草라고 불러도 무람없다. 사정이 이 지경이니 한 지인은 감귤 묘목을 구해 심어 보겠다고도 한다. 기후변화를 실감한다.
베니스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최악의 홍수를 겪으면서 산마르코 광장이 80cm나 물에 잠겼고, 해마다 25cm씩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도 그저 남의 일이겠거니 했다. 주기적인 홍수와 부식으로 베니스 전역의 건물들이 지하실과 저층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면서 결국 많은 이들이 베니스를 떠나고 있다는 소식에도 안쓰럽긴 했으나 내 발등이 뜨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 겨울을 지내면서는 위기감이 피부에 와 닿는다. 눈도 안 오고 강추위도 없으니 출근길도 편하고 난방비도 절약된다는 농담을 할 여유조차 없다. 그만큼 위기감은 엄중하고 날카롭다.
지난 30년간 지구 기온이 10년마다 0.15~0.6도 상승하면서 히말라야 빙하가 매년 70m씩 후퇴하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50년 뒤에는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한다. 그만큼 해수면이 상승할 것은 자명하다.
남태평양의 투발루라는 나라는 이미 국토 일부가 물에 잠겼다. 최고 해발고도가 5m에 불과한 이 나라는 1999년에 9개의 산호섬 중 1개의 섬이 가라앉았으며, 매년 침수 면적이 증가하고 있다. 투발루 정부는 공식적으로 국토 포기를 선언했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영화 대사로도 유명한 몰디브 역시 해안선이 후퇴하고 국토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관광으로 먹고살던 나라가 생계마저 막막한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때문이다. 세계가 이 지경이니 해안을 끼고 있는 부안도 예외는 아닐 터, 그동안 시민사회단체가 그토록 줄기차게 외쳐온 ‘해수유통’이 수십 년 후엔 자동으로 될 거라는, 웃고 넘길 수만 없는 예측도 나온다.
학자들은 온난화의 원인으로 이산화탄소와 메탄, 프레온가스 등 온실기체 증가와 열대우림의 감소 등을 꼽지만,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사태의 근저에는 인간의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다시피 사람들은 언제부터가 자본을 축적하는데 온 생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걸신이 들린 것 마냥 돈, 돈, 돈을 외치며 자신의 둥지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기들만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듯, 자식 세대들은 어떤 재난을 겪든 알 바 아니라는 듯 지구 약탈을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9 올해의 인물’로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만 17세로 올해의 인물 사상 가장 어린 수상자다. 타임은 “인류가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와 맺는 포식적 관계에 경종을 울리고, 파편화된 세계에 국경을 뛰어넘는 목소리를 전하며, 새로운 세대가 이끄는 시대를 보여주기 위해 툰베리를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툰베리는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는 대신 스톡홀름의 스웨덴의회 앞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인 당찬 소녀다. 그녀의 이 같은 행동은 세계 100개 이상 도시에서 또래 학생들의 ‘동맹파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당신들이 공허한 말로 내 어린 시절과 꿈을 빼앗아 갔다”고 질책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툰베리는 이 회의에 참석하려고 탄소 배출이 없는 태양광 요트를 타고 보름 만에 대서양을 건넜고 유럽으로 돌아갈 때도 범선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녀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손주들에게 우리가 가능한 모든 것을 했다고, 너희들과 다가올 세대들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싶다”며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내일은 분명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3년이면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청소년이 무려 5만여 명이나 세계잼버리에 참가하기 위해 부안에 온다. 그리고 그들은 새만금 매립지에서 야영을 하며 지구촌의 주요 이슈인 환경, 평화, 인권 등에 대해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실제로 스카우트연맹 측은 ‘청소년들이 세계 자연환경이 직면한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고 어떻게 환경을 위해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활동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조제를 쌓음으로써 갯벌을 파괴하고, 그 뻘에 기대어 살아오던 뭇생명의 숨통을 끊어놓은 바로 그 자리, 최악의 환경파괴 현장 새만금에서 말이다. 아이러니라고 하기엔 가슴부터 아프다.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새만금은 사실 단군 이래 최대의 자연 파괴 사업이자 세계 최장의 해안선 파괴 사업이었다. 그뿐인가. ‘지속 가능한 발전’은커녕 수조 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붓고도 최악의 수질로 전락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전북도, 부안군은 여전히 돈 타령이다.
이들은 잼버리 준비를 위한 SOC 구축 등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가 전국적으로 6조4천억 원, 전북은 3조6천억 원에 달하고, 부안에는 1조 원어치의 생산유발 효과가 예상된다고 호언한다. 잼버리 운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전국적으로 1198억 원, 전북이 755억 원, 부안은 453억 원이란다. 불과 수십 년 후면 새만금이 통째로 물에 잠길 수도 있는 마당에 돈 계산을 하고 있는 정치인·관료들의 생명에 대한 몰지각과 철학의 빈곤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물론 국제적인 약속인 만큼 잼버리대회를 다시 물릴 수 없다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범정부적인 국제행사를 앞두고 초를 치자는 심산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기왕에 치러야 할 대회라면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일테면 세계 젊은이들에게 새만금 파괴의 역사와 최악의 수질 악화 등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어른들의 잘못을 솔직히 실토하는 거다. 해수유통을 하던 방조제 일부를 허물던, 복원 가능한 지역은 최대한 되살리고 복원이 불가능한 지역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지속 가능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제대로’ 개발하겠다는 선언도 하자. 그리고는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이 아이디어를 다오”라며 손을 벌리는 거다. ‘네 꿈을 그려봐’라는 잼버리 슬로건에 맞게 청소년들이 새만금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내도록 맡겨보자는 것이다. 그나마 새만금 간척으로 죽어간 뭇생명들에게 사죄하는 길이며, 후세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지 싶다. 지구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 마치 주인인 양 해악질을 하다가 종국에는 비참하게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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