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자·부상자 저에게로 오세요”

“핵폐기장 반대투쟁 과정에서 다치거나 부상을 입으신 주민 여러분은 대열 뒤편에 원불교 유응주 교무님 앞으로 가서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집회 때면 사회자가 언제나 유교무가 있는 곳으로 주민들을 안내한다. 유응주 교무는 반핵 집회 때면 항상 뒷자리다.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손에는 꼭 노란 봉투가 들려있다. 반핵대책위에서 구속자, 부상자 집계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보상 소송 및 법률 관련 일을 맡았다.
“법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법 관련 일을 하니 대책위든 당사자든 속으로 많이 갑갑해 했을 겁니다”라며 쑥스러운 듯 특유의 털털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작년에는 원불교 교당 업무를 거의 못 봤다고 했다. 핵폐기장 투쟁 과정에서 부상자, 구속자 등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거세게 일어난 작년에는 거의 매일 전주교도소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두 토막. △11월 17일에는 20명이 잡혀 15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바람에 정작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한 번씩 면회하고 나면 한 달이 다 갔다. △11월 17일 수협, 군청, 터미널, 아담4거리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뒷날 아주머니들이 밥을 지으려 가스불이 안 나와 점검해보니 가스통이 사라졌다. 바로 전날 집회 때 가스통을 사용한 것이다. 그만큼 격렬한 집회였음을 말해준다.
혼자서 바쁘게 뛰어봤지만 수감돼 있는 주민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면회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많이 서운했을 것이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수감돼 있는 주민들을 면회하고 재판을 챙기고 하다 보니 교도소에서 온 편지가 수북하다.
수북히 쌓인 편지가 말해주듯 최근에 출소한 강양수, 이인열씨도 하나같이 유 교무에게 감사하다며 인사말을 전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에 띠지 않는 일을 묵묵히 챙기는 유교무의 노력을 이해하고 감사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유교무는 전남 구례가 태어난 곳이지만 7살 때부터 익산에서 살아온 터라 익산이 고향이다.
여전히 익산에 집이 있지만 유교무는 교당에서 기거한다. 교당에서 살아가며 지켜야 될 규범을 ‘도량상규’라고 부른다며 설명했다. 그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그 무엇이 간절하다는 다른 표현으로 들렸다.
유교무의 원불교 교무생활은 올해로 12년째가 됐다. 부안교당에 온지는 2년이 지났다.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1년 5개월에 접어들었으니 부안 생활 2년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핵폐기장 반대 투쟁과 함께 보낸 셈이다.
천주교의 신부, 불교의 승려, 원불교의 여성교무는 독신으로 살아가지만 유교무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슬하에 6살, 9살 먹은 두 딸까지 있다. 원불교에서 남자 교무가 있다는 것도 새롭지만 결혼까지 했다니 더욱 의아스러웠다. 원불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결혼을 허용한다고 했다. 법리상 여자교무의 결혼을 막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교무 정화단에서는 성문법으로 정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불문율인 셈이다.
대화 도중에 민가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구속돼 있던 주민이 출소했는가를 묻는 전화 같았다. 이인열, 강양수씨가 출소했는데 또 구속자가 발생했다는 통화 내용이었다. 이제 한시름 놓는 줄 알았더니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니, 일거리라는 표현보다는 챙겨야 될 또 한 명의 식구가 생겼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영주 기자 leekey@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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