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란 도전과 웅전雄戰의 기록이라고 했다.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상가가 시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선각자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루소가 살던 시대 분위기가 인위적 문명사회의 타락을 비판하고 『사회계약론』을 쓰게 한 것처럼 철학이나 사상은 시대를 반추하는 역사의 한 단면이다.
 『목민심서』는 200여 년 전 애민愛民의 심정을 풀어낸 선각자의 마음 글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관념론으로 치우친 성리학에 대한 비판서로도 볼 수 있으나 시대의 유기성에 천착,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완성된 즈음의 조선은 격변의 시기였다. 거듭된 전쟁과 오랜 당쟁으로 인한 민심의 황폐와 수구 세력의 봉건 지배 등으로 조선은 거친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은 형국이었다. 이 같은 시대적 난국을 극복하고자 한 개혁 의지가 실학이다. 17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까지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실학은 사실을 토대로 학문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실생활에 응용하고자 했던 실천적 학문이다. 이 같은 학문을 토대로 개혁을 꿈꾼 인물이 정약용이다. 위당 정인보는 조선사상사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실사구시를 이야기하며 실학 삼조로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을 들었다. 그러나 반계와 성호는 다산의 현실 정치 주창과는 거리가 있다.
 본문은 관리의 임명에서부터 해임까지의 과정을 쇄신에 입각하여 그려나가고 있다. 특히 목민관의 올바른 자세를 권면하고 있는 제1부 (부임赴任), 제2부 (율기律己), 제3부 (봉공奉公), 제4부 (애민愛民)에서는 명예와 재리財利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 것 등 수령의 청렴과 겸손을 통해 적폐 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관청의 아전 단속을 자애롭지만, 엄격히 해야 한다는 점과 근속의 임용을 신중히 하되 지방에 묻혀 있는 현인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임을 이야기한 제5부 (이전吏典), 제6부 (호전戶典)에서는 호적 정비와 전정·세법의 혁신을 통해 구민救民를 꿈꾼다. 이어 제7부 (예전禮典), 제8부 (병전兵典), 제9부 (형전刑典), 제10부 (공전工典), 제11부 (진황賑荒), 제12부 (해관解官)의 12편으로 나뉜다.
 각 편은 다시 6개 항목으로 나누고 이를 72항목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각 조의 머리에는 백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지방관의 올바른 자세를 제시하고 이어서 그것에 대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분석한 글과 자신의 진보적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옷매무새 여미듯 마음 자락을 가지런히 하고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다 보면 혹세무민의 정세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렴주구에 빠진 백성을 향한 다산의 애민愛民에 이르게 된다.
 단순 비교는 무리나, 말년의 노자는 나라를 등지고 무위無爲의 세계로 가버린 사람이고, 석가는 가족과의 인연을 두고 교단敎團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산은 영어의 몸이면서도 『목민심서』를 썼다. 망망대해 남해 끝자락에서도 놓지 않은 애민. 그의 개혁에 대한 심중이 실증적 실사구시를 낳은 것이다. 조선왕조에 영향을 끼친 사상이 주자학 또는 성리학이라고도 하지만 『목민심서』를 상재한  다산이야말로 조선 후기 개혁의 중심일 것이다.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신세계가 수시로 등록되고 사라지는 이 시대, 다산의 형상화된 실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령의 본분은 민民에 대한 봉사 정신에 있으며 백성은 애정을 가지고 돌봐야 할 대상이라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담은 『목민심서』. 시대를 거슬러 이 책을 붙들게 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위정자가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위민爲民의 정신이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은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당리당략에 함몰되어 극과 극으로 치닫는 벼슬아치들이 가까이 두고 수시로 손 녹여 펼쳐야 할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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