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 물품을 나눠줄 때 붙이는 '키다리 아저씨' 스티커

익명으로 수년간 2천만 원 상당 선행 펼쳐
알려진 게 전혀 없어 ‘키다리 아저씨’ 별명
복지관, 훌륭한 기부자 있는 것에 감사할 뿐

들썩한 기부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요즘 부안종합사회복지관에 수년째 익명으로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매년 2천만 원이 넘는 선행을 펼치고 있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성이 무엇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모른다. 때문에 부를 호칭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키다리 아저씨’다. 복지관의 한 직원이 미국의 여류작가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해 붙인 이름이지만 누구 하나 틀렸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다만 고향이 부안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키다리 아저씨 앞에 ‘부안’이 붙여지기도 하고 간혹 ‘복지관’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 중국에서 사업한다는 말이 있어 ‘상하이’ 키다리라는 말이 붙기도 했지만, 소문에 그친 탓에 쓰지 않는다.
키다리 아저씨는 연말이 되면 제3자를 통해 복지관에 연락해 온다. 후원받는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를 묻기 위해서다. 물론 현금이 필요한 분이 있다면 현금을 보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생필품을 직접 사서 보낸다. 복지관은 후원이 필요한 사람을 선정하고 이들이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해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작년에는 난방텐트가 주 품목이었다면 올해는 쌀과 휴지, 세제와 라면 위주로 구성했다. 한 가지 품목을 무작위로 배달하는 수준을 넘어 맞춤형 후원이 가능해지면서 만족도도 높아졌다.
기부금액이 많다 보니 후원물품도 다양하고 수혜자도 많다. 부안복지관은 올해에도 관장을 비롯해 직원들이 조를 나눠 6개의 지역아동센터와 장애인, 노인, 결연 가정 등 약 100여 명의 이웃을 직접 찾아가 물품을 전달했다. 가가호호 방문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처리할 업무도 쌓여가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키다리 아저씨의 뜻에 맞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잘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멈출 수 없다고 한다.
물품을 받은 한 보안면 어르신은 “이렇게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받으니 겨울이 전혀 춥지 않을 것 같다”라고 기뻐하며 “누가 보내는 것인지 알고는 받아야 할 것 아니냐”고 후원자를 묻기도 했다.

복지관 창고에 쌓여 있는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 물품 사진 / 부안종합복지관 제공

복지관 직원은 “후원자가 누군지 물어보는 어르신이 많지만, 아는 게 없으니 알려줄 수도 없는 탓에 ‘그냥 복지관에 후원해 주셔서 가져다드리는 것’이라고 말해줄 뿐”이라고 말했다.
본지도 기사화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키다리 아저씨의 실체를 찾아 나섰지만 50~60대의 사업을 한다는 정도의 사실 외에는 알 수 없었고, 익명을 요구하는 뜻을 존중하기 위해 중간에 취재를 포기해야 했다.
이춘섭 관장은 “그가 누군지 알 필요가 있느냐”며 “다만 훌륭한 기부자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복지관 전 직원이 연말에 지역주민을 한 번 더 만나는 뜻 깊은 시간이 됐다”며 “복지관을 찾아오기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물품을 전달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은 지역복지를 선도하는 기관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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