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문화 사회/지역
100년 된 등룡리 성당, 신자들 도움으로 '새 단장'

1918년 8월에 건축, 1926년에 성당 역사 시작
역사가치 인정받아 2010년 본당으로 재승격
신자들, “뜻 기리는 후손의 마음 담아 개보수”

부안성당의 전신인 ‘등룡성당’이 신자들의 도움으로 최근 개보수를 거쳐 새 단장을 마무리했다.
등룡성당은 등룡마을의 탄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등룡마을은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신부 종가의 종손인 김양배가 등룡리 일대의 갈대밭을 사들여 친척과 교우들을 불러들이면서 생겼다.
기록에 따르면 1903년에 15가구에 5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고 하니 이 교우촌이 지금의 등룡마을인 셈이다.
신부가 있어야 성당이 있는 법이지만 김양배는 마을을 이루듯 신부가 올 터부터 닦았다. 1918년 8월 29일 20평의 성당과 8평의 사제관을 신축하고 그해 12월 대구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교주의 주례로 성모칠고(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고통)를 주보로 모시고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계산하면 올해는 건립한지 101년이 된다.
성당은 마련됐지만 사목(사제가 신도를 지도하여 이끄는 일) 할 신부가 없던 탓에 무려 8년 동안 대구교구를 다니며 신부 구하기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한동안 사목이 없던 이곳에 처음으로 파견된 신부는 대구교구 이기수 몬시뇰 신부였다. 당시가 신축 후 8년이 지난 1926년 5월 30일이니 이때부터 등룡 본당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등룡본당의 초대 회장의 당연히 김양배가 맡았다. 잘 이끈 탓인 지 신자수가 5백 명이 넘어서면서 더 큰 성당이 필요했다. 하지만 너무나 외지고 주변이 교우촌으로 둘러싸여 발전할 수 없었던 등룡본당은 9년째 되던 해인 1935년 부안읍내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러면서 본당의 지위를 자연스레 내려놓고 등룡공소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보다 앞선 1932년에는 등룡본당 차원에서 일제의 우민정책에 맞서기 위해 등룡리 학술강습소를 설치하고 60여명을 교육시키며 시대의 변화에 적응 나서기도 했다. 이 때 공을 들인 이가 김양배의 둘째아들인 김종기다. 전주농고 1회 졸업생인 김종기는 마을에 공동 양돈장을 설치하고 뽕나무를 심게 하는 등 마을발전에 공헌을 해 마을이 표창을 받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50년대 초에는 2,400평의 논과 5천여 평의 산을 기증에 등룡공소와 부안본당의 재정에 도움을 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 외국 농축산물수입중단, 소 값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부안농민들이 벌린 ‘소몰이 투쟁’이 등룡리에서 시작된 이유도 이곳이 등룡성당을 뿌리삼아 천주교 신자로 구성된 마을인 탓이기도 하다.
이같이 100여년을 신도들과 함께하며 가치를 간직해온 등룡공소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난 2010년 1월 31일 본당으로 재승격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등룡마을 서정택 이장은 “등룡마을을 애기함에 있어 등룡성당을 빼놓는 것은 역사와 뿌리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건물이 낡아 수리가 필요한 점도 있지만 등룡성당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정신적 유산을 보존하고 뜻을 높이 기리기 위한 후손들의 마음이 담겨있다”라고 성당 개보수의 의미를 피력했다.

김종철 기자  ibuan@ibuan.com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종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