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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동학농민혁명사 21>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과정에서 백산대회의 위상
  • 박대길(부안군/문학박사)
  • 승인 2019.12.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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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2월 20일, 부안읍행정복지센터에서 개최된 학술대회(동학농민혁명을 되돌아보다 – 사발통문부터 백산대회까지-)에서 발표한 필자의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과정에서 백산대회 위상」을 요약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과정에서 무장기포를 제외한 모든 사건이 고부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이 반영되었다. 즉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탐학과 수탈, 만석보 수세, 녹두장군 전봉준, 사발통문거사계획, 예동마을 걸굿, 말목장터 감나무, 고부 관아, 고부 관아 점령, 백산, 백산대회 등이 모두 고부에 속하였던 것이다.
특히 백산에서 개최되어 ‘앉으면 죽산이요, 일어서면 백산’이란 회자된 백산대회가 핵심이었고, 백미(白眉)였으며,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이에 따라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은 고부봉기가 일어난 1월이 아니라 3월에 개최된 백산대회였고, 많은 사람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3월 봉기로 이해하였다. 그 당시 백산은 “조선의 비결(秘訣)에도 적혀 있을 정도의 땅으로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일면만이 겨우 인마(人馬)가 다닐 수 있으며, 근방은 유명한 평야로서 백산만 우뚝 높다. 비결에 이르기를, ‘고부의 백산은 가히 만민을 살릴 수 있다.(古阜白山 可活萬民)”는 길지(吉地)였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1968년, 전국적인 행사로 정읍에서 처음 개최된 ‘갑오동학혁명기념문화제’가 백산대회에 맞추어 개최되었다. 정읍에서 개최하는 공개행사를 부안군에 속하는 백산대회에 맞추어 한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3월 봉기, 즉 백산대회로 인식한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해에 ‘사발통문거사계획’을 확인시켜 준 사발통문(沙鉢通文)이 공개되었고, ‘갑오동학혁명기념문화제’가 개최되었다.
1894년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3월 봉기가 아닌 1월의 고부봉기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사발통문이 공개된 이후 6년이 지난 1974년이었다. 사발통문의 공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월 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사발통문을 근거로 3월이 아닌 1월의 고부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여전히 3월 봉기, 즉 백산대회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1985년에 무장기포가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3월 백산대회나 1월의 고부봉기가 아닌 무장기포가 시작일이라는 주장은 이후 다수설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04년에 제정․공포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동학농민혁명 특별법)」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범위를 “1894년 3월 봉기 이후”로 정하면서 고부봉기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제외되었고, 3월 봉기를 무장기포로 해석함으로써 백산대회는 실체마저 부정당하였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의 초기 전개과정에 대한 해석이 다양성이 아닌 ‘왜곡(歪曲)’에 가깝게 이루어진 결정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초기 과정을 개별사건으로 구분하고 분리시킨 후 단절시킨 결과였다. 즉 고부봉기의 성격을 민란으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실패로 단정을 짓고 3월 봉기(무장기포와 백산대회)와 단절시킨 것이다. 그리고 오랜 동안 백산대회를 3월 봉기로 이해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으로 인식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백산대회를 부정하고 3월 봉기를 무장기포로 왜곡한 것이다.
그 결과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에서 고부봉기는 제외되었고, 백산대회보다 6일 먼저 일어난 무장기포를 3월 봉기로 해석하도록 유인함으로써 3월 봉기는 무장기포가 되었다. 검인정한국사교과서 역시 무장기포가 다수설이 되었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으로 상징되는 백산대회는 명실공이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과정의 정점으로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894년 당시는 물론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기 전까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으로 인식된 3월 봉기였다. 2019년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이 제정됨으로써 향후 국가 차원의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처럼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과정에서 뒤틀린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백산대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 할 것이다.

박대길(부안군/문학박사)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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