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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좋다”, 나의 성장기
  • 안옥근 (계화/결혼이주여성)
  • 승인 2019.12.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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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2019년 전북여성새일센터 취업성공수기 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안옥근 씨의 수상 소감과 그의 삶에 대한 애기들을 들어보고자 취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안옥근 씨의 개인사정에 따라 취재를 뒤로 미루고 당선작을 먼저 실습니다. 차후 취재가 되는 대로 클릭 이사람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 말

 

저는 중국에서 온지 15년 되었습니다.
저를 만날 때 남편은 어부였습니다.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장 일을 한지 7개월 되었습니다. 어부 일도 힘이 들지만 현장 일을 하면서 더 힘이 들지만 하려고 하는 모습이 고맙기만 합니다.
저는 중국에 있을 때 우연히 친구 집에 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저의 첫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첫 남편은 소방관) 혼자 많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첫 남편과 사이에서 아들(12세)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희망이 보였습니다. 2004년 8월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국에 왔는데 오자마자 첫째 딸을 가졌습니다.
남편은 어부니까 바다일 하고 있었는데 저는 한국말도 잘 모르고 낮선 땅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며 그냥 집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남편이 바다에서 잡아온 왕새우, 게 등 신선한 해물을 참 많이 먹었으며 행복했고 3년 후 둘째 딸이 태어났습니다.
저는 둘째 돌 지나고 다문화센터에 가서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경제적으로 도움도 받고 한국문화에 적응도 하고 싶어 하루 3시간 알바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알바를 많이 하는 것은 남편이 반대하여 하루 3시간만 알바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2010년도에는 운전면허증도 취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버스시간이 변동되어 시내버스 이용이 불편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자주 아프다보니 병원을 자주 가게 되면서 필요함을 느껴서입니다.
그리고 2112년에는 한국어 능력시험 4급을 취득하고 2014년 4월에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7월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였습니다.
간호조무사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꿈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절실하여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고 저의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런 기회가 왔고 저는 한국에서 꿈을 이뤘습니다.
지금은 저의 아들도 한국에 왔으며 온지 8년 되었고 현재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있으며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하자 저는 교차로 신문을 보고 반듯한 첫 직장을 찾아 ㅇㅇ요양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2년을 근무하였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는데 연속 2년 동안 하다 보니 쉬고 싶어 두 달을 쉬다보니 첫 직장에서는 내 자리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문화센터를 찾았고 취업상담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민여성으로 50세의 나이에 나의 조건에 맞는 직장을 찾기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담을 하고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군요양병원에 주간 근무 간호조무사로 취업을 위해 동행면접으로 알선해 주었으며 새일여성 인턴제로 연결을 해주어 저는 지원금도 받게 되었으며 업체에도 도움을 주고 계속 채용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힘들고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이 있겠지만 옆에서 저를 지켜봐 주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저는 용기를 내고 한국에서 이루어진 내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2004년에 한국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한국어를 공부하고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열심히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한국 속담에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열심히 살아왔기에 저의 삶에 보람을 느끼며 저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하여 보았습니다.

안옥근 (계화/결혼이주여성)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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