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아무도 모르게…

한해를 보내는 이맘 때 쯤이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기사 중 하나가 누가 어디에 얼마를 기부하고 어떤 봉사를 펼쳤다는 애기들이다. 떠들썩한 12월의 봉사 행렬 속에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펼쳐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 있다고 해 물어물어 줄포면 파산리를 찾았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인터뷰라뇨, 자랑할 것도 없고 남에게 알릴만한 꺼리가 못 돼요”
손사래 치며 한사코 취재를 거부하는 사람은 ‘한마음 이·미용봉사단’을 8년째 이끌어 오고 있는 이춘문 단장이다.
“많은 사람이 추천한다, 감사패도 받지 않았느냐, 충분히 훌륭한 일이다”라는 말에 미동도 없던 그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봉사를 전염시켜 보자”는 제안 때문이다.
자신을 알리는 것보다 봉사를 널리 퍼지게 하자는데 마음이 움직인 그는 군대 시절부터 시작된 이발 봉사로 애기를 풀어갔다.
“굳이 부르자면 이발병이었어요, 어깨 넘어 머리 깎는 것을 보고 동기들 머리를 손대다 보니 쉽게 기술도 늘고 재미가 붙더군요. 좀 깎는다는 소문이 났던지 쉴만하면 머리 깎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어요. 내 시간을 쪼개야 하니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어요. 특히 휴가를 앞둔 병사들이 단정해진 자신을 보고 흡족해 하면 기분이 참 좋았지요”
말이 이발병이지 훈련이란 훈련은 모두 똑같이 소화해야 하니 그냥 이발 봉사하는 병사나 다름없다. 당시엔 포상휴가도 적었을 테니 병사들의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때부터 자원봉사자의 자질이 자라 온 것이다.
제대 후 고향인 줄포에서 과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이 단장은 10년 전 ‘새만금적십자회’를 통해 자원봉사자 길에 들어섰다. 이 단체에서 1년에 한두 번씩 집을 수리하는 등 봉사에 참여했지만 양이 차지 않았다. 더 도와드릴 것이 없나 찾아보던 중 버릇처럼 어르신들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깎아 봐서 그런지 어르신들 머리만 보이더군요, 나이가 적든 많든 어딜 나가려면 머리부터 다듬잖아요, 근데 다 돈이에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발봉사다 싶어 결심했죠”
많지 않은 농사에 가정을 꾸리고 애들 키우느라 빠듯해진 경제 여건도 몸으로 할 수 있는 이발봉사를 선택하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
이 단장은 부안군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하는 3개월짜리 이·미용 교육을 이수하고 본격적인 봉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무턱대고 달려들 수는 없었다. 한번에 100명에 가까운 어르신들 머리를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했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해 8년 전 11명으로 구성된 ‘한마음 이·미용봉사단’을 조직했다. 현재 회원 수는 9명이며 한 달에 한번씩, 셋째 주 수요일 날 9시부터 12시까지 부안군요양병원을 찾아 봉사를 펼치고 있다. 그간 한 번도 쉬지 않고 해왔으니 이곳에서만 약 100회의 자원봉사를 펼친 셈이다.
“혼자였다면 어떻게 다 했겠어요. 다 회원들의 도움 덕이죠”라고 말하지만 봉사단을 이끄는 단장으로써 한 차례도 빠질 수 없던 책임감의 무게에 힘든 적도 많았다는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순수한 재능기부 봉사단체다 보니 곳곳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외면하지 않았다. 잘라도 다시 자라는 게 머리카락이라 지금도 변함없이 많은 요청이 들어오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 마다하지 않고 참여한다.
머리가 예쁘지 않다고 호통 치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을 땐 눈물도 나고 세월의 무상함에 의욕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봉사단을 이끌 후임이 없는 것이 걱정이라고 한다.
이 단장의 봉사는 이·미용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변산반도 국립공원에서 추진하는 외래종 풀 제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자연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이달 말에 변산에서 열리는 해넘이 축제에도 참여키로 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몸이 쓸 만하다고 한다.
이 단장은 봉사 외에도 가정 살림도 도맡아 하고 있다. 수년전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했고 거동에는 지장이 없지만 청소 같은 단순한 노동도 어려워 온갖 집안일은 이 단장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무슨 봉사인가요, 그냥 자기 만족이지”라고 희생과 봉사는 한 몸이라 말한다.
또한 “도와줘야만 할 상황으로 내몰리기 전에 봉사자의 손길이 미쳐야만 효과를 발취할 수 있다”며 “밤 되면 어두운 걸 누가 모르나요. 그 시간에 가로등을 켜야 무섭지 않죠”라고 날짜가 정해진 정기적이고 꾸준한 봉사활동이 많아져야 세상이 더 밝아진다는 논리를 편다.
‘봉사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라며 “봉사가 전염병 같이 잘 퍼지려면 글을 잘 써야 하는데…… 글 봉사 잘 혀 봐요”라고 함박웃음 짓는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