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윤, 「동학농민군 백산봉기」, 1976년.

1894년 1월 10일에 시작된 고부봉기 당시부터 전략적 요충지(要衝地)로 자리 잡은 백산에서 3월 26일(양력 5월 1일),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과정에서 정점(頂點)에 해당하는 ‘백산대회’가 개최되었다.
전라도 일대 동학교도와 민중이 총집결한 백산대회에서 혁명군이 조직되었으며, 혁명의 대의를 밝힌 격문과 강령에 해당하는 4대명의, 그리고 혁명군의 군율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사발통문거사계획이 실현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 백산은 고부에 속하였고, 고부관아 점령을 비롯한 초기 사건들이 고부를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곳은 당연하게도 고부가 되었다. 즉 사발통문거사계획과 고부관아 점령, 그리고 무장기포를 거쳐 3월에 백산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비로소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 된 백산대회를 가리켜 ‘앉으면 죽산이요, 일어서면 백산“이라는 상징어가 회자(膾炙)되었고, 백산대회는 3월 봉기가 되어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되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할 때 백산과 백산대회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 되었고, 혁명이 좌절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1914년, 일본이 한반도 식민정책을 영구화하기 위해서 단행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고부 백산에서 부안 백산이 되었다. 그 이후 오랜 동안 백산과 백산대회는 의붓자식이 되었고, 지역민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갔다.
1963년 10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최고 실권자였으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의장이 백산에서 불과 10여㎞ 떨어진 황토현전적지에서 개최된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제막식에 참석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간 ‘동학란’으로 폄하되던 1894년 사건이 혁명이 되었다. 뒤이어 1968년부터 정읍에서 백산대회일(4월 26일)에 맞추어 ‘갑오동학혁명기념문화제’를 개최하였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였다. 그러나 부안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백산과 백산대회는 부안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였고, 어쩌면 외면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국민총화를 내세운 체제 유지와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민족 정체성 확립과 전통문화의 보존과 발굴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민족기록화’ 사업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독립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족기록화’ 중 1976년에 오승윤 화백이 제작한 「동학농민군의 백산봉기」가 전한다. 제작 당시 제목이 ‘동학교주 전봉준’으로 되어 있듯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국정교과서와 검인정한국사교과서에 실리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현재는 백산대회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이 그림의 제작 의도는 5․16군사쿠데타와 동학농민혁명을 같은 혁명으로,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가 동학농민혁명 최고 지도자 전봉준이 같다는 점을 국민에게 심어주려는 데 있었다. 이처럼 그림의 제작의도가 불순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동학농민혁명 기간 중 일어난 여러 사건 중 백산대회를 꼭 집어 활용한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백산대회가 동학농민혁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한다. 즉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불세출의 영웅 전봉준이 백산대회를 개최하고 혁명군을 조직하며 본격적인 혁명의 대장정을 시작하였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석으로 파괴된 백산

이처럼 백산대회가 국가차원에서 기억할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안에서는 별다른 관심조차 갖지 못하였다. 오히려 ‘백산 파괴’라는 세간의 질타를 받았다. 1987년 3월, 동아일보는 ‘동학혁명 백산성터 채석으로 크게 훼손’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1년이 한참 지난 1988년 11월에는 한겨레신문에 ‘동학혁명 백산성터 채석으로 크게 훼손 - 갑오농민전쟁 유적지 보존 엉망, 안내표지판 볼 수 없고 채석장까지 들어서’라는 기사가 실렸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동아일보[1987. 03. 23] 기사

백산이 채석으로 파괴되던 1989년, 백산 정상부에 ‘동학혁명백산창의비(東學革命白山倡義碑)’가 건립되었고,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 되던 1994년 11월 14일에 ‘동학농민혁명백산봉기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다. 때늦은 일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해마다 ‘동학농민혁명 백산봉기 기념대회’가 백산면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2009년부터 부안군으로 확대하였으나 이에 걸 맞는 기념사업회와 기념행사가 운영되고 개최되는지, 그리고 부안군민은 물론 전국적으로 홍보가 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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