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인 선생은 손님인 학생을 잘 모셔야 한다”는 정하영 교장 ⓒ장정숙

“주인인 선생은 손님인 학생을 잘 모셔야”

동학의 고장에 독립운동가의 우뚝한 기상

면 소재지의 고등학교 배구부가 서울로 원정, 전국을 휩쓸었다. 1982년의 백산(白山) 고등학교였다. 통학 구역이라야 8km 안 밖인 벌판의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이곳을 ‘참교육’을 전파하는 전교조(全敎組)의 거점으로 삼고 전국을 휩쓴 교사들의 축출공세에도 난공불락의 아성을 쌓았다. 역대 군사정권의 탄압은 물론 김영삼-김대중 정권초기 까지도 기승을 부리던 노조탄압을 가열 찬 투쟁으로 극복한 1991년의 백산고등학교였다.
2019년도 저물어 가는 지금은 어떤가. 지난 12월 초 필자는 부안군 백산면 백산로 379 백산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새 주소가 되기 전까지 평교로 불리던 고부 천변, 백산성 앞 1km 남짓에 붉은 벽돌 빛깔의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고등학교 건물이다. 20여 년 전 선거 때 이 학교에 들른 적이 있지만 교장선생님을 뵈러 간 건 처음이다.

삼남중에서 31년

- 부임하신지는 언제지요?
“4년 전입니다.”
- 전에도 이 학교에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삼남(三南)중학교에 있었습니다.”
- 아, 그렇습니까, 삼남에선 어떤 책임을 맡으셨는지.
“평교사지요. 영어를 맡았습니다. 대학 나오고 바로.”
뜻밖이었다.
8.15 해방과 6,25 전쟁, 그 혼란과 고난 속에서 백산의 유지 몇 사람이 소작의 굴레에서 해방된 기쁨을 향학의 기운으로 몰아갔다. 일본 사람 지주의 농장 사무실이 백산중학교의 임시 교사로 쓰여 졌다. 백산의 넓은 벌판은 거의 수백 수천정보를 가진 일본 대지주의 차지였다. 부안에서도 조선 사람 큰 지주가 없는 곳이 백산이다. 여기에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를 세우고 교사-교감-교장-이사장의 책임을 맡아 명문 사학으로 키운 사람이 정진석(鄭振奭)선생이다. 정 교장은 정진석 선생의 차남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의 매부나 형은 학교나 재단의 책임을 번갈아 맡아왔다. 그런데도 흔히 연고가 많은 백산을 놓아두고 줄곧 부안읍내에 있는 삼남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니!
-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됐습니까.
“글쎄요, 제가 말할 처지가 아니지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보다 더 궁금한 일이 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느 날 오후 추모비 아래 잔디밭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정하영 교장

“학교 주인은 선생님, 손님인 학생 잘 모셔야”

- 지금 백산고등학교의 교육환경은 어떻습니까?
“아시다시피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맞추지 않고는 낙오되고 맙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지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새로운 세계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지난날 생각이나 지식은 어느 새 통용될 수 없는,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사회에 적응할 인간을 북돋아주고 키우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생각할 때 참으로 어깨가 무거움을 느낍니다. 우리 식견이 교육환경의 변화를 얼마만큼 소화해 내느냐 그게 문제지요.”
- 학교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갑자기 물으시니…… 평소에 저는 ‘학교 주인은 선생님이다.’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런 말을 많이 해왔어요. 선생님이 ‘내가 주인이다’하는 생각으로 손님인 학생들을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어떻게 모셔야 할 것인가, 손님인 학생들이 선생님들보다 더 똑똑하고 새로운 세계에 더 민감한 경우도 있는데 주인이 웬만큼 공부하지 않고는 손님의 수요나 요구를 맞추기 어렵지요.”
- 훌륭한 교육철학이네요. 흔히 학생이 주인이라거나 재단이 주인이라거나 하는데 주객관계로 보는 게 재미있군요.
“저는 이런 관계를 ‘모시는 관계’라고 부르지요.”
‘모신다’, 얼마나 숭고한 말인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모신다면 어색하게 들리지만 주인이 손님을 모신다면 별 저항이 없을 것이다. 장바닥이든 백화점이든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상냥하고 깍듯이 한다고 해서 뭐가 이상한가. 가르친다, 봉사다, 헌신이다, 하는 식의 판에 박힌 말보다 한결 산뜻한 맛이 풍긴다.

자립, 진취, 협화의 색다른 백산중고 교훈

30년 영어 선생

정하영. 1957년 12월 23일 아버지 정진석과 어머니 이명환 사이에 부안군 백산면 덕신리 145에서 태어났다. 백산초등-백산중-백산고(1977, 9회)를 거쳐 원광대학 영어교육과를 나왔다. 1984년부터 2015년까지 햇수로 32년을 삼남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여기 백산고 교장으로 온지 5년, 내년 2월 정년퇴임 예정이라고 한다. 백산에서 태어나서 초, 중, 고등학교 12년간 백산을 이마에 달고 다니다 말년을 모교 교장으로서 퇴임하게 됐다니 손님과 주인을 번갈아 한평생이다.
- 흔히 서당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요. 교직이 그만큼 고달프다는 뜻일 겁니다. 교장 선생님은 30-40-50대의 전부를 교직, 그 ‘선생’을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저는 지금은 물론 전에 삼남에 있을 때도 아주 보람을 느꼈어요. 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게 그렇게 좋아요. 운동을 같이 하거나 음악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처럼 같이 공부하고 놀아 주는 겁니다.”
누구 편에서 보고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교육환경을 보는 눈은 이토록 다르다. 학생이나 선생이나 학부모나 간에 실상 체제순응에 길들여 온 교육정책의 희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참교육’의 현장을 보는 맛이 괜찮다.
백산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다. 220명 안팎의 학생 가운데 남녀의 비율은 6대 4 정도, 학생의 약 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기숙사의 남녀 비율도 전체 학생 비율과 비슷하다.
- 다 큰 애들 떼어 놓지 않으면 선생이나 부모나 간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게 세태인데 어떻게 남녀공학을 하게 됐지요?
“그 점이 우리 학교자랑중 하나입니다. 우리 학교는 자율과 평등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남녀 칠세 부동석? 다 들 클 만큼 컸으면 자율적으로 자기 관리할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다만 선생님들은 호통치고 징계하는 일보다 어떻게 하면 자기 본성을 쑥쑥 키워낼 수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 해야지요.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만, 학생들의 패기를 살려야 한다는 것 입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 기(氣)가 중요하지요, 민족정기, 독립자강의 정신, 창조적 상상력, 이런 기가 공기처럼 충만해야겠다, 이런 거지요.”
이 학교는 이 고장의 역사나 지리를 제대로 알도록 하는데 힘쓰고 있다고 한다. 120여 년 전 이곳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항쟁은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꾸었다. 100년 전 이곳의 청년 선각자 김철수는 평생을 항일운동에 바쳤다. 한때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자로 지탄받고 배척 되었다. 전후 14년 동안이나 옥고를 치루고 해방이 되어서야 조국 땅, 고향 흙을 밟은 그는 불굴의 부안 백산 사람이었다. 역사는 멀리 가지 않아도 백산성 언저리에, 동진강과 고부천 기슭에 쌔고 쌨다. 그뿐만이 아니다. 1966년 이 고등학교를 세운 정교장의 아버지 정진석 선생(1920~2004)이 젊은 시절의 이념과 활동 때문에 온갖 비방과 악선전에 시달리면서도 불사조처럼 일어서서 시대를 앞서 이끌었다.
지금 백산에는 지난날의 스타 배구선수도 역전의 전교조도 없다. 대신 새로운 날을 위해 세계로, 우주로 훨훨 날아갈 비상(飛翔)의 날개가 현란하다.
 
 

10여 년 전 일본 교육 시찰 중 삼남중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왼쪽부터 행정실장, 김영배 교감, 노창열 교장, 맨 오른쪽이 지금 백산고 교장인 정하영 선생.

심각한 인구감소

- 학생 수가 많이 줄어 걱정이지요?
“흔히 농촌 인구가 크게 줄어드는 걸 걱정하는데 어디 농촌만 줄어 듭니까. 서울도 강남, 강북의 차가 있고……”
미국의 일극 군사 강국과 신자유주의가 휩쓴 맹독은 빈부귀천은 물론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어느 고등학교 할 것 없이 사립학교의 존립은 거의 국비에 의존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강하고 정부의 통제도 강해지는 추세지만 그렇다 해서 학교의 특성을 살리는 일은 그 학교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아닐까. 지방자치단체는 80 몇 %를 국비에 의존한다.
- 퇴임하시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몇 가지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힐 처지는 아니고……”
백산고등학교 정문 앞 왼쪽에 지운 김철수 선생의 추모 석비가 우람하게 서있다. 항일 애국지사 지운 김철수 선생 추모비(抗日愛國志士 遲耘金錣洙先生追慕碑) 세로로 쓴 한자 글씨다. 3~4미터 됨직한 큰 오석. 울퉁불퉁 대강 다듬은 보기 드문 석비다. 추모비 오른쪽 좀 떨어진 곳에 당초 지운 선생의 묘 앞에 세워졌던 상석과 백비가 있다. 백산 원천리 고향에 묻혔던 유해는 얼마 전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 되었다. 백산 고등학교와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 선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이 기억해야 할 두 상징을 결합시킨 사람이 바로 이 학교를 세우고 키운 정진석 선생이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세종대왕과 충무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들을 현창함으로써 이들이 임금 가운데 한 사람이라거나 한 장군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함께 우리를 일깨운다. 백산고등학교는 한 독립 운동가를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고 지켜냈다.
정하영 교장은 기전 여대 미술과를 나온 같은 57년생인 서호주 여사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j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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