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컴퓨터, 멀티미디어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시대, 첨단과학문명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새로운 디지털문명에 자의든 타의든 젖어들 수밖에 없다. 이전의 소통방식인 종이와 문자언어에서 네트워크성이 강한 전자정보시스템으로의 전이는 소통의 혁명을 이루었으나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게 만들었다. 휴먼human의 상실이 인류에의 상실로 결론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문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의 중심에 있다. 한 해를 보내야 하고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는 12월의 초입, 『무서운, 멋진 신세계』를 통해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돌아보는 계기 삼으면 어떨까.
 『무서운, 멋진 신세계』는 작가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끄트머리 몇 년의 소회를 글로 묶어낸 책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 책 속에 예견되어 있다. 작가가 몸담았던 출판계를 비롯한 문화사업 전반과 그 자체의 속성에 따라 제어할 수 없는 정보통신과 과학, 인간성에 기인할 생명공학까지 다양한 시선이 담겨 있으며 대체로 불안하고 미덥지 못한 21세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은 「핸드폰, 노트북을 살까말까」였다. 지금은 어린아이도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저항했던 때가 생각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내용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휩쓸려가는 일이 마뜩치 않았던 것도 있고, 나이를 핑계로 새로운 문맹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도 했다. 작가처럼 깊은 사색은 아니었지만 느리고 자유롭기를 바랐던 내 남은 삶에 디지털 세상은 익숙함을 빼앗는 폭력 같은 거였다.
 현대의 전자 문명이 가져다주는 신속함과 정확함에 저항감을 지워버리지 못하고 느리고 게으르게 불편함을 견디며, 속도를 버리고 평온을 누릴 수 없을까하고 회의하는 작가는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으로 디지털의 새로운 의식 세계를 점쳐보려고 한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의 시대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질서’ 즉 진지한 정신적 가치가 탈락하는 탈근대화의 문화, 자본으로부터 생산의 개념이 박탈된 탈산업화의 경제가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는 탈실재의 공허한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본의 흉측한 욕망으로 지배되고 있다는 것, 그런 세계에서 우리의 삶이 가볍고 쉽고 빠르며 그래서 인간다움의 아름다운 모습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지러움을 겪는다. 이 책이 쓰인 시기와 책에서 예측했던 일들과 미래의 시간으로 구분했던 지금이 머릿속에서 섞이어 일부는 현실이 되었고, 이미 건너가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진행 중인 현상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의 전혀 멋있을 것 같지 않은 그래서 작가가 ‘무서운’을 덧댔을 것 같은 미래의 시간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빛과 그림자는 있게 마련이다. 어두운 쪽에 생각이 가 있는 작가가 한 줄 빛을 발견한 것은 “대중문화는 공식 문화의 권력을 얻는 대신 부분적으로나마 지니고 있던 억압받는 탕자로서의 저항정신, 불온서 같은 것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시 쓰기 방향은 반전되어야 한다.”는 대목이다. “대중문화의 블랙 홀 같은 파괴력에 응전해야 하는 것이 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라는 것, 그 과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문학 내부에 기댈” 수밖에 없고 “시의 육체를 더욱 힘껏 껴안는 것이 그 어떤 활력으로서의 불온성을 만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이런 의식의 새로운 다짐은 디지털 문화체계에 대해서도 유지될 매우 진지한 긍정적 가능성이라는 점에 격려를 받는다. 디지털 세대에 의한 디지털 문화의 비판이 그것의 실질을 비판하는 것이며 억압에 대한 창조적인 저항의 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의 타락과 억압에 대한 진정한 저항이 될 것이고 그 저항을 통해 전시대의 문학이 가진 엄숙성과 해방의 가능성이 지속·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은 잘난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근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견, 발명인데 그것은 자연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이데거 역시도 역사적 실존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였듯, 겸손은 미덕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 문학에서 대상에 대한 이면적 진실을 볼 수 있는 눈도 이 겸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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