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 불출마선언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표창원, 이철희, 이용득 의원, 자유한국당의 김세연 의원 등이다. 그 외에도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의원인 제윤경 의원도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입맛이 씁쓸한 이유는, 그나마 이들이 300명 국회의원 중에 의정활동에 비교적 충실한 편에 속하는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정치상황 속에서는 더이상 국회의원을 안 하겠다고 한다. 반면에 정작 그만둬야 할 사람들은 그만둘 생각이 없다.
그래서 최근의 불출마 선언을 보면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표현이 생각난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 대한민국 정치를 만든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그만둘 생각이 없고, 그나마 나은 사람들만 이런 식의 정치를 못 견뎌서 그만두겠다고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쉬운 점들도 많다. 정치를 시작했으면, 최소한 이런 식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 뭔가를 하고 나서 그만둬야 할 것 아닌가?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처럼 된 데에는 선거제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관리만 잘 하면, 국회에서는 아무리 엉터리같은 의정활동을 해도 재선이 가능하다. 그래서 각종 비리의혹에 막말, 갑질 사건을 일으켜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일수록 정치를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불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선거제도 개혁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를 시작한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김세연 의원은 자유한국당 내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개혁에 저항하는 것이 대세인 것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합리적 보수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왕에 불출마선언까지 하는 마당이니 ‘보수입장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얘기는 했어야 한다. 김세연 의원 말대로 ‘좀비정당’이 유지되는 이유도 현행 선거제도에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때문에 특정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의 국회의원은 ‘당은 망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런 국회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좀비정당’이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좀비정당’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원인이 되는 선거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사실 과거에 합리적 보수를 자처했던 유승민 의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야말로 합리적 보수에게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독일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 소속이다. 그런데 2005년부터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기독교민주당은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운영할 정도로 ‘합리적 보수’에 속한다. 메르켈 총리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내에서는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쪽이 우위에 서기 쉽다. 여전히 정당의 지지기반을 지역주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주목을 끌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보수정당 내에서도 ‘합리적 보수’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은 진보든 보수든, 합리적인 세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토론이 가능한 정치가 된다. 정책으로 경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지역구 관리만 열심히 하는 ‘악화(惡貨)’가 의정활동에 충실한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현상도 사라질 수 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지금까지 와는 달리 의정활동에 충실해서 자기 정당에 실질적인 성과를 안겨주는 국회의원이 대우받게 될 것이다.
이제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제도 개혁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부의가 가능해지는 시점이 12월 3일이니까 그 직후에 표결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 표결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온 한국정치가 변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역사적인 표결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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