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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
  • 박정근 (대진대 교수)
  • 승인 2019.11.1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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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대진대 교수, 윌더니스 문학 주간, 소설가, 시인)

우리 사회는 조국사태 이후로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뜨거운 도가니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검찰개혁을 주장했던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자마자 자한당을 중심으로 검찰, 언론 등이 가세하여 그를 낙마시키려고 난장판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려 70여 곳을 압수수색을 하고 관련기사는 500백만 건이나 써댔다는 기록적인 통계에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악질적인 사건이라 해도 검찰과 언론이 이토록 적극적인 공격을 한 적이 없다. 시민들의 상식적 관점에서 이런 과도함은 다른 사건에 비해 공평성을 지나치게 파괴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검찰과 언론과 그들과 밀착된 기득권층들이 이념적 편견을 가지고 조국을 낙마 시키려 했던 것은 분명히 불공정한 의도였다. 문제는 그들이 낙마의 이유로 들이대는 조국 가족의 입시와 사모펀드의 사소한 불공정성이 기득권층의 고질적 불공정성과  뒤섞여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곁가지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가치관의 혼돈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조차 스펙을 통한 입시를 이용했다는 일방적이고 단정적인 언론과 검찰의 발표에 휘둘려 조국 가족에게 불공정한 분노를 터뜨렸다. 왜냐하면 그들의 불공정성은 공격의 당사자들로서 더 큰 권력층의 범죄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이 아무리 강변해도 그들의 무리한 수사야말로 기득권층들이 자신들의 권력의 핵심인 검찰을 철저하게 옹호하려는 의지로 인해 조작해낸 수사와 언론플레이의 사회적 히스테리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피터 코닝이 쓴 「공정 사회란 무엇인가」에는 타이어 공장에서 19년 동안 일한 릴리 레드베터라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작업의 질적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성 노동자보다 지속적으로 봉급을 덜 받은 걸 알고 은퇴 후 재판을 통해 고소를 했다. 그녀는 차별받은 급여, 손해배상, 법정비용을 청구했는데 법정에서 배심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대법원에서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되고 말았지만 이 사건은 2007년에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안”으로 하원을 통과함으로써 시민들의 공정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당시 상원의 지지를 받지 못해 좌절되었으나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서 법안이 통과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사건은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적 차별이 제도적으로 고질화되어있던 불공정성을 한 여성시민의 고소에 의해 어렵게 개혁할 수 있었던 시민차원의 의식혁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김수영 시인이 그랬듯이 우리는 왜 거대한 부패, 독재, 차별에는 눈을 감으면서 적십자비를 받으러 온 동사무소 서기에게 화를 내느냐고 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졌던 비인간적 독재정권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였던 검찰, 기레기들이 조국의 아내 정경심 교수의 불확실한 인턴 증명서에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침을 쏴대었는지 줄기차게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시민들의 인권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이전 정권부터 자신을 포함해서 제도적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장려했던 스펙 쌓기에 자신은 덕을 못 봤다는 이유 하나로 대단한 영웅이나 된 양 열을 내는 소시민이 우리 자신이 아닌가 자성해야 하는 것이다.
공정성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대우를 받고 있는가의 문제이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구와 관심 그리고 권리를 서로 배려해서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피터 코닝은 정의한다. 일의 가치나 질의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한 달 내내 노동을 해도 기아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박사학위를 가지고도 최저생활에도 못 미치는 강사들이 즐비한데, 전관예우라는 명분으로 전직 검찰과 판사들이 한 건에 수억 원을 챙기고 주식거래 한 번에 수십억을 버는 증권거래 직원들의 존재가 결코 공정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특권을 가진 소수가 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그런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는 공정성을 이미 상실한 실패작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다수가 노력과 능력에 걸맞고 타인들과 균형을 이룸으로써 행복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 사회를 함께 찾아야 하는 것이다.

박정근 (대진대 교수)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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