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복권, 치료비 보상 등 뒷전에 미룬채 유치 선정 유공자 훈·포장 줄 일인가

“참 눈도 징그럽게 내렸었제…” “날은 또 을매나 추웠는디…”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장을 맡았던 박원순 변호사는 지난 2004년 2월 14일 밤, 주민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 땅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부안 주민 여러분은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라며 그 의의를 밝힌 바 있다. 혹자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부안 투쟁이 있었기에, 부안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한다.

부안주민들의 독자적인 주민투표.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부안 주민항쟁의 과정에서 실형(집행유예이상)을 선고받은 80여 명을 포함하여 벌금형 등 사법처리를 받은 주민이 300여 명에 이르고, 경찰과 공권력의 폭력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400여 명의 부상자가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내 고향을 ‘핵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고향을 물려주고자 했던 바로 그 이유였다. 부안군수의 반민주적인 독선에 대한 항의와 주민 권리의 주장이었다. 20년 가까이 미뤄왔던 정부의 잘못된 국책사업 추진에 대한 항의요, 경고였다.

그런데 이를 두고 불법, 폭도, 님비주의라 매도했다.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경찰은 공권력의 이름으로 짓밟았고, 언론은 제멋대로 유린했다. 정치는 애써 모른 채 하거나, 어렵사리 시늉만 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부안 주민들은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견디어냈다.

온 국민에게 촛불에 담은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다. ‘핵폐기장, 핵발전소가 왜 문제가 있는지, 에너지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눈 감고 귀를 막았다. 오히려 부안 주민들이 애써 쌓은 ‘참 민주와 풀뿌리 주민자치의 공든 탑’을 무너뜨려 버렸다.

2005년 11월 2일. 경주와 군산 등 4개 지역에서 실시된 주민투표.

민주주의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사상 유례가 없는 관건, 금권 선거가 치러졌다. 오죽하면 ‘자유당 때 막걸리 선거’에 비유되었겠는가?

그럼에도 지난 연말 국정 홍보처에서는 ‘2005년 올해의 10대 뉴스’에서 1위로 ‘경주 방폐장 부지 확정’을 꼽았다. 오죽이나 내세울 게 없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최소한의 안전성과 경제성조차도 고려되지 않은 채, 3000억 원의 유치지원금에 한수원 본사이전, 양성자 가속기사업 등을 끼워 넣고, 주민투표라는 형식으로 포장한 채 실시됐다. 지자체마다 공무원을 총동원하여 온갖 부정을 저질렀고 그 선두에서 시장, 군수가 직접 진두지휘를 했다. 부재자 신고를 필두로 투표의 전 과정은 온통 불법 천지에 망국적인 지역감정까지 총 동원됐다. 당연히 이를 막았어야 할 경찰과 선관위 등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두가 한 통속이 되어 찬성률 높이기에 혈안이 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힐 일이 있다. 지난 1월 25일 정부는 핵폐기장 유치 선정 유공자 86명에 대해 훈장과 표창을 수여했다. 명단에는 국무총리실, 산자부, 선관위 관계자는 물론 한수원, 원자력 문화재단, 관련 업계 직원과 경주시, 전라북도 공무원과 경찰, 국정원 직원까지 포함됐다.

조직적으로 불법 주민투표를 계획, 집행, 묵인, 방관한 자들이 총 망라된 것이다. 징계의 대상이어야 할 이들에 대한 훈·포장은 결국 불법행위를 해서라도 정부의 의도대로 잘 따른다면 포상이 주어진다는 역사에 전례 없는 뒤바뀐 사례를 남긴 것이다. 정부 스스로 불법을 조장하는 꼴이라니….

지금도 핵폐기장 추진이 휩쓸고 간 지역에는 주민들의 피와 눈물이 가득하다. 부안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에 대한 사면복권, 부상자 치료비 보상 등 최소한의 신뢰조치 등 선행돼야 할 일들은 뒷전에 미뤄둔 채,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주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핵폐기장 추진이 어찌 훈·포장을 받을 만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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