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비참하고 절망적 내용이지만 궁상스럽고 슬프지만 않아”
강 시인, 작가의 말에서 “떠나지 않고도 만나는 인연이고 싶다”

1990년대 중반,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를 통해 “그리움을 낳아 기른 슬픈 시인의 사랑”을 노래했다는 평을 받은 강민숙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둥지는 없다』(실천문학刊)를 발간했다.
남편의 사망신고와 아이의 출생신고를 같이 해야 했던 험난한 운명의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둥지는 없다’는 삶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둥지가 없다는 사실은 상실을 뜻한다. 그러나 그 상실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인은 그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인도, 티베트, 히말라야, 아프리카, 그리고 사하라 사막과 산티아고 순례길…….
둥지를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은 끝이 없다. 마침내 시인은 애초부터 인간에게는 ‘둥지는 없다’는 사실을, 그 ‘없음’을 처절하게 인식하면서 궁극적인 실존에 질문을 던지고 치열한 몸부림을 치는 것이야말로 뭇 생명들이 가진 가장 가치 있는 도전이자 사명(使命)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 생로병사의 몸부림이야말로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집’ 그 자체라는 인식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영위해 가는 방법이 각기 달라도 생명을 받아 유지해 나가는 본질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54편의 시편들에 배어 있다.
신경림 시인은 추천사에서 “강민숙 시인처럼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시인은 흔치 않다. 그는 아들의 탄생을 알리는 기쁨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동시에 남편의 사망 신고를 해야 했다”고 기억하며 “이때의 심경을 그는 곧잘 두려움 속에서 날개를 접고 어둠을 응시하며 떠는 연약한 새에 비유했다. 만약에 시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 어둠속에 한 개의 그림자로 묻혀버렸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그에게 시는 어둠을 이겨내고 일어서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비참하고 절망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궁상스럽고 슬프지만은 않다”면서 강민숙의 시 ‘곰소항’의 일부를 소개한다.
“곰소 염전에/발 한번 담가 보자/그러면 나도 눈부신/소금이 될 수 있을까/한나절쯤 발 담그면/빛나는 결정이 될 수 있을까/햇볕에 등짝 태우며/온종일 견디다 보면/나도 뼛속까지 빛나는/소금이 되어/새우, 멸치, 바지락 젓갈에 섞여/구수하게 곰삭아질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햇볕에 등짝 태우는 곰소항의 소금처럼 뼛속까지 눈부시고 빛이 나 그의 시는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 시집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했던 세계적인 인물들이다. 그런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당대의 관습과 제도와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으려고 거침없이 도전했던 인물들이다. 시집 속 표제작을 보자.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나를 금치산자, 인격 파탄자로 내몰아도 저기 밤하늘의 별들은 내게 찾아와 빛으로 피어나고 있다. 내 안의 세계를 보여 줄 수 없는 나는 기호의 창문 열고 불안과 우울의 털실로 옷을 짜고 있다. 별빛과 달빛 뽑아내어 한 올 한 올 옷을 깁고 있다.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건네 보지만 사람들은 입지 않는다. 보이는 현상이 실제라는 관념의 다리를 끊어 버리고 훌쩍 건너오라고 해도 그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본다.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우울을 읽는다. 상징은 꽃이 아니라 기호의 둥지가 아니던가. 둥지는 없다. 날아갈 곳이 없는 새 한 마리 상징이 날개인 줄도 모르고 날개 접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둥지는 없다-보들레르」 전문)
현실에서는 안착할 곳도, “날아갈 곳”도 없다. 날아갈 곳이란 시인이 지향하는 이상 또는 이상적인 곳. 그러나 없다. 날아갈 곳이 없는 새는 어떤가? “날개 접고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현실에서 시적 자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날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어둠을 웅시하는 일이다. 시적 자아를 둘러싼 주위는 어둠뿐이고, 그는 그 어둠을 응시한다. 그러나 어둠을 응시하면서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별’이라 했다. 이 별빛이 시적 자아의 내면이다. 
“옷의 꽃은 단추다//물방울처럼 둥근/옷의 텃밭에//단단히 뿌리내린/꽃은 구멍이다//뻥 뚫린 구멍 사이/꽃 진 자리 휑하다//다시는 꺾이지 않을/깊이로 꽃을 심는다.//한 땀 한 땀 단추를 단다. (「단추를 달며」 전문)
시집에는 다양한 시적 화자의 상처와 그늘이 짙게 배어 있는 시들도 많다. 그 상처와 그늘이 햇볕 속에서 소금처럼 빛나는 결정이 되고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며 독자들을 부른다. “옷의 꽃은 단추”라고 인식하는 순간, 사소한 단추 달기라는 작업마저도 신성하고 의미 깊은 일이 되는 것처럼.
“바라나시/갠지스강은 시간이었다/길게 누워 흐르는/시간이었다/타닥거리는 불길 속/환한 미소/삶과/죽음의 시간이 뒤엉켜/고삐 없는/피안(彼岸)으로/물소 한 마리/풍덩 뛰어들고 있다/아, 물씬한 이승의 냄새여. (「갠지스강」 전문)
갠지스강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도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시간도 그렇다. 우리가 이번 생에 여기 오기 전에도 시간은 있었고, 우리가 다음 생에 다시 올 때도 시간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우리는 태어나서 욕망에 들끓는 시간을 살다가 간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고, 그러다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고, 병들어 괴로워하는 시간을 산다. 그러다 세상을 뜨면 강가에서 나무에 불태워져 재가 될 것이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다. 불타서 재가 되는 육신을 바라보며 눈물만이 아니라 미소를 짓는 화자가 이 시 속에 있다.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에서 나오는 미소이며, 강민숙 시인은 ‘상실’에서 ‘획득’을, ‘부정’ 속에서 ‘긍정’을 발견하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내게는 손이 없다/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는/손잡이도 없다/도망칠 발도 없다/나에게는 온통 없는 것만 있을 뿐이다/그래서 아무리 펄펄 끓는/물속도, 타오르는 불길도/무섭지가 않다/사람들 손에 잠시 들렸다가/버려지는/삼 그램쯤 되는 목숨 하나/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종이컵」 전문)
강 시인은 부안에서 나 숭의대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고 동국대와 명지대에서 문예창작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1년 등단해 아동문학상과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외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강 시인은 이번 시집 말미에 이렇게 소리친다. “다 놓쳤다. 바로 눈앞에서/일어난 일들을 놓치고서도/나는 놓친 줄을 몰랐다/비도 놓치고, 바람도 놓치고…….//돌아다보니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다./많은 사람들이/붙잡기 위하여 산다는데/지금 손안에 붙잡고 있는 것은/어느 것 하나 보이지 않고/손금만 늘어간다//둥지를 잃고 바람의 구두가 되어./몽골과 티베트 거쳐/갠지스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탄자니아 세링게티/그리고 사하라와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돌고 돌아보았다//내가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과연 무엇이었을까/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이념과 이념이 저마다 다르지 않았으며/개와 염소 사람과 동물도/단지 모습과 색깔만 다를 뿐이지 않았던가//산으로 간 사람은 산에서 만나고/강으로 간 사람은 강에서 만난다고 했다/이제 떠나지 않고도 만나는/인연이고 싶다/제발 나 좀 붙잡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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