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이사야 벌린 / EJB

세상에는 하나의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진리의 이름으로 타인을 억압할 수 없다. 따라서 낭만은 정체되지 않는 무엇이다. 귀족정치에 항거하는 부르주아의 반란이었으며 이후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이었다. 진리라 함은 과정이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으로써 이는 낭만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탄생하였고 19세기 전반부 서구 유럽의 새로운 문화로 부각된 사조이다. 인간의 감정이 이성보다 중요하고, 집단보다는 개인이, 분석보다는 종합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는 18세기 계몽사상가들, 특히 이성을 신뢰하던 철학자들을 혹독히 비판한다. 이들은 인간의 따스한 육체와 피를 영혼 없이 움직이는 기계로 타락시켰고,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마비시켜 오직 숫자놀이를 좋아하는 동물로 환원시킨다.
낭만주의는 ‘여기’를 중요시 하지 않는다. 예컨대 그들은 현실에 기반 하지 않고 다른 세계를 꿈꾼다. 이를 테면 여기에 있으면 어디론가 가고 싶고, 그곳에 있으면 다시 오고 싶은 충동을 갖는 자들로, 낭만주의는 실존에 있는 어떤 측면, 특히 인간 삶의 내적인 측면을 인식한다. 이 사실이 이전에는 전적으로 무시되었고, 전체적인 실상이 매우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1760년부터 1830년 사이 유럽인들의 생각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사야 벌린은 17세기와 18세기의 유럽 사회를 면밀히 관찰한다. 이를 토대로 낭만주의는 무엇보다 당시 유럽의 2등 국가로 전락했던 독일인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과 굴욕감,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하여, 사물의 불변하는 구조는 존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힘으로서의 인간 의지가 최우선에 놓여야 함을 주창한 운동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낭만주의는 전복성이 강하다 할 수 있다. 낭만주의 본질은 의지와 행동으로서의 인간을 있게 하고 이는 끊임없이 창조하기에 묘사할 수 없는 무엇이며, 그것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주체가 없고 오직 운동만 존재할 뿐인 그 무엇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성과는 인간의 사유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으며 인류가 걸어온 거대하고도 유일한 틀, ‘영원의 철학’을 깨트렸다. 아울러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예술가의 개념(자유)을 알게 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낭만주의가 19세기의 정신적 특성을 드러내는 문화 운동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낭만주의가 너무도 복잡한 문화 운동임을 역사가들은 알고 있었으며 쉽사리 정의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속받지 않는 강력한 의지가 자유롭게 창조하는 세계를 구현하려 했던 낭만주의는 주체의 외연을 개인에서 국가와 민족 같은 공동체에까지 넓히며 피히테의 민족주의나 파시즘처럼 극단적 왜곡된 형태를 낳기도 했다. 이를 통해 낭만주의는 개인의 불굴의 의지, 개인의 신념과 이상을 강조하면서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의 의지를 인정하고 타협할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인류는 타인의 이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이상도 인정받을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었기 때문인데, 결국 낭만주의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은 바로 이 관용과 이해의 정신일 것이다.
구약을 벗어난 예수도 한 손에는 개혁과 변화를, 다른 손에는 관용과 이해에 따른 사랑을 들고 이 땅에 왔다. 하면, 작금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해의 부재와 분열된 국론은 생동이며 과정일 것이다. 필경 그곳에는 낭만적 잔바람과 잔물결이 인다. 가을이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 이유이다. 구획되고 획일 된 것으로부터의 일탈, 그것은 곧 낭만주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깊게 물들어가는 가을, 벤치에 앉아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펴고 우리 모두 관용과 이해의 대화를 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배귀선 부안독서회 지도교수, 문학박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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