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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 이완용 공적비, “없애자” vs “이용하자”
줄포면사무소에 보관돼 있는 이완용 공적비 사진 / 줄포면사무소 제공

줄포 해일 피해 시 난민 구호, 제방 건축 공적비
이완용과 당시 부안군수 유진철도 새겨져 있어
군, “비석 옆 친일행적 적힌 안내판 설치해 보존”

암울하고 비극적인 과거를 돌아보고 역사를 바로 보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줄포면 사무소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일명 이완용 공적비에 대한 재조명이 요구되고 있다.
게다가 새만금개발청이 건립하고 있는 새만금박물관 측에서 이 비석을 전시하겠다며 비공식적으로 이전을 타진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군민들 사이에서는 뺏기지 말고 오히려 활용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줄포에 있는 김상만 가옥, 줄포보통학교의 3.1운동 등 상기해야 할 역사를 감추고 없앨 것만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최근 제주도를 시작으로 시대적 상처를 입은 현장이나 장소를 찾은 일명 다크 투어리즘 (Dark Tourism)이 젊은 세대들로부터 공감을 이끄는 새로운 관광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상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다크 투어는 책이나 인터넷 등 정보에 의해 역사적 사실을 접하는 것 보다는 당시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 간접 체험을 하면서 아픈 과거를 느끼고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는 마음을 새기는 여행의 일종이다.
대표적으로는 독일의 베를린이나 폴란드에 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를 들 수 있다. 국내는 제주도의 일본군 토굴이나 비행장, 항일항쟁과 제주 4.3사건을 잇는 관광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친구의 한국방문기를 보여주는 TV의 한 프로그램에 볼 수 있듯 외국인들이 전쟁기념관이나 서대문형무소 등을 찾는 것도 같은 형태다.
창고에 보관중인 이완용 공적비는 1899년경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 고장 줄포’라는 책에 따르면 이완용은 1898년 전북 도백(지금의 도지사)으로 부임했다. 그해 줄포에 큰 해일이 닥쳐 주민들이 인근 야산으로 피신하는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줄포 항에 정박한 배들이 지금의 십리동 마을 (줄포면을 지나 고창방면)과 장동리 원동 마을(서해안 고속도로 줄포 IC인근)까지 밀려올 정도였다고 하니 상당히 큰 피해로 추정된다.
이때 이완용이 줄포를 찾아 피해상황을 살피고 당시 부안군수인 유진철에게 난민 구호와 언뚝거리 제방을 중수토록 하였다. 이후 제방이 견고해지면서 오늘의 대포가 생기고 일제 때 서반들 매립공사로 이어져 지금의 줄포 시가지가 형성됐다.
이듬해 정월에 부안군수와 주민들은 이완용의 구호사업을 기리는 비를 장승백이(지금의 장성동, 줄포초등학교 남쪽)에 세웠다. 비석 전면에는 이완용과 군수였던 유진철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을사늑약이 1905년에 체결됐으니 당시만 해도 이완용은 을사오적이 아닌 도지사라는 높은 직위를 가진 공무원이었던 셈이다.
어찌됐던 친일에 매국노였던 이완용의 이름이 들어간 공적비는 광복을 맞으면서 원망의 대상이 됐다. 유실 위기에 처한 이 비는 신 아무개라는 개인에 의해 보관되다가 1973년에 줄포면장 김병기가 이 비석을 개인 돈인지 군비인지 모르는 3천원을 들여 구입해 면 청사 뒤에 세워뒀다. 먹고살기 바빴던 탓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관심 받지 않던 이 비석은 1994년에 ‘나라 바로 세우기 및 일제 잔재 없애기 운동’의 일환으로 철거 돼 지금과 같이 면사무소 창고에 보관 중에 있다.
공덕비는 41.5㎝, 길이 109㎝, 두께 10㎝로 갓 비(갓을 올린 비석) 형식으로 제작됐지만 수난을 겪은 탓인지 현재 갓은 사라진 상태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로 부안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등 일제의 만행을 곱씹는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때문에 이 비석도 존폐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일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줄포면사무소 청사 뒤에 세워져 있었기에 그나마 훼손이 안 된 것이지 진작 때려 부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또 다른 주민은 “엄연한 역사기 때문에 남겨서 교육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 과거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부안군 관계자는 “나쁜 기억은 잊는 게 좋겠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은 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친일파 박기순이 만든 전주 덕진공원내 「취향정(醉香亭)」을 예로 들며 “역사의 현장을 없애버리기 보다는 원래의 자리에 비석을 세운 후 그 옆에 친일 행적을 사실 그대로 기록한 안내판을 설치해 잘못된 과거를 후손에게 알리는 것도 기억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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