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손 모내기 한 논에서 직접 벼를 베고 있는 부안고 1학년 학생들 사진 / 김종철 기자

“이렇게나 많이 컸어요. 완전 대~박”
맨발로 논바닥을 누비며 기분 좋은 야릇함에 취해, 심은 것인지 꼽은 것이지 모르게 5월 손 모내기를 마쳤던 부안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지난 23일 직접 벼 베기에 나섰다.
한 번 지나가면 여섯 줄의 벼를 탈곡하는 최신형 콤바인을 옆에 두고 학생들이 낫을 들고 덤벼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들 손으로 직접 심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연이 주는 놀라운 혜택과 농부가 흘린 땀방울의 소중함을 직접 느껴 보기 위해서다. 여기에 지금시대에 어느 누가 손으로 벼를 베어 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인가라는 자부심도 덤으로 챙길 수 있다.
얼마나 크고 중요한 행사인지 시작 20분 전부터 우도농악회 회원 10여명이 자진모리, 중중모리 등 농악놀음을 펼쳐 학당고개가 들썩였다.

흥을 돋우고 있는 우도농악보존회

이 농악회는 매년 벼 베기 행사해 참여해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추수를 앞두고 하늘에 감사함을 고하는 고천문 낭독에는 하늘도 울었는지 몇 방울의 가을비도 떨어졌다. 정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니 풍년은 말 할 것도 없다. 친환경 유기질 비료에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해 농약 등 일체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주는 유기농 인증만 없을 뿐이지 학생들이 인정하는 진짜배기 유기농 벼다.

수확에 앞서 고천문을 낭독하고 있다.

학생들 급식에 들어가기 때문에 따로 판매하지 않지만 워낙 쌀이 좋고 약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 판다고 하면 서로 사려고 난리가 날 것이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관계자의 말이다.
밥 하는 것보다 먹는 게 빠르듯 벼도 심는 것보다 베는 게 빠르다. 낫에 모터를 단 학생이 있는가하면 2인 1조의 기막힌 협업을 펼치는 학생도 있다. 물론 낫인지 도낀지 모르게 벼를 장작 패듯 하는 학생도 있고 벼를 베는 게 아니라 뿌리째 뽑아내는 학생도 있다. 하나 베고 허리 펴고 땀 닦고 먼 산 바라보는 세월아 네월아 학생도 있다. 낫질도 서툴고 옮겨야 하기 때문에 베어진 벼만큼이나 땅에 떨어진 이삭도 수두룩하다. 아까운지 하나하나 줍는 학생도 있다.
아무리 논바닥을 잘 말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축축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될 수 있으면 피하라고 진행자가 말리지만 굳이 이곳에서 신발을 버려가며 벼를 베는 학생도 있다. 가만히 보니 어차피 더러워진 신발 재미있는데 라며 흙 놀이를 즐기고 있다.
벼 베기는 뒷전이고 논 위쪽 집에 열린 단감을 따느라 정신없는 학생도 있다. 물어봤더니 주인아저씨에게 허락을 받았단다. 아까부터 학생들 벼 베는 것을 신기한 듯 구경하던 아저씨가 그 집 주인이다. 이 학생들은 감을 씻는다며 또 남의 집에 들어 가 결국 씻어먹었다.
고사떡과 과일에 한 눈 파는 아이도 있다. 일찌감치 벼를 베고는 고사 상 주변을 서성이다 한 움큼 떼어 들고 입에 넣기 바쁘다. 반듯하게 걸어 다니는 걸 보니 다행히 제주로 놓은 막걸리는 손대지 않았다.

자신이 벤 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학생들

언 듯 보면 뒤죽박죽 행사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행사가 아닌 축제였다. 잘 못 베고  게으름 핀다고 나무라는 선생님도 없고 벼를 함부로 다루거나 낫을 위험하게 쓰는 학생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올 봄에 심은 작고 가녀린 벼가 훌륭하게 자라서 기뻤고 이것을 수확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불어 수학이니 영어니 하는 학업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가을 오후를 보내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한 축제였다.
부안고등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사 프로그램은 5년 이상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타 지역 학교에서 벤치마킹 해가는 등 교육적 효과도 인정받고 있다. 부안고는 매년 해온 것처럼 11월 11일 가래떡 데이를 맞아 올해 수확한 벼로 가래떡을 뽑아 학생들과 함께 나눠먹을 계획도 갖고 있다.
부안고 한 선생님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바른 인성을 갖게 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폭 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며 “쉽게 접할 수 없는 손 모내기와 벼 베기 체험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매년 도우미로 수고를 마다않는 농부 김한준 씨(하서면. 36)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쌀값이 얼마냐’고 아이들이 물을 때마다 농촌과 농업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 기쁘다”며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들이 농사체험을 갖는다는데 하루쯤 시간 내는 것이 대수냐”며 쓰러진 벼를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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