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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죽산(竹山)이요, 서면 백산(白山)이라-백산대회 ①
  • 박대길(부안군/문학박사)
  • 승인 2019.10.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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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대회에 맞추어 개최된 제1회 갑오동학기념문화제(1968. 4. 26)

2004년 3월 5일,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90년 만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다. 이로써 90년 동안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역적의 굴레에 갇혀 있던 참여자들이 애국애족운동에 나섰다가 희생당한 것으로 정리되었고, 법적으로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음으로 양으로 헌신했던 분들이 나서서 국가가 인정하고, 국가가 기념행사를 주관하는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제정에 나섰다.
그 당시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후보로 무장기포와 황토현전투, 그리고 우금치전투 등 여러 사건들이 추천되었다. 당연하게도 백산대회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기념일 제정을 위한 학술대회가 개최되면서 백산대회의 실체(實體)가 부정되었고, 급기야 백산대회를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로 추천했던 연구자들마저 이를 철회하고, 다른 날을 제시하였다. 그 당시 백산대회를 부정한 연구자가 내세운 논리는 간단했다. 1930년대 후반 오지영이 쓴 『동학사(東學史)』 이외에는 백산대회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오지영의 『동학사』는 역사서가 아닌 소설이며, 오류가 많다는 지적을 내세웠다.
그 결과, 백산대회는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후보에서 제외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2012년에 교육방송(EBS-TV)에서 제작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다큐에서는 백산대회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부안의 사정은 참으로 딱했다. 이러한 정황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백산면 사람들만 참여하는 면단위 기념행사를 십시일반으로 어렵게 개최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학사에 기록된 백산대회

동학농민혁명에 직접 참여했을뿐 아니라 『승정원일기』까지 참조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을 정리한 오지영의 『동학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義軍이 古阜城을 陷落한 後 白山에 도라와 陣을 치고, 再度의 檄文을 發한 後로 湖南一帶는 勿論이오, 全朝鮮江山이 古阜 白山을 中心으로 하고 흔들흔들 하엿섯다. 當時 白山에 모여든 사람은 누구누구냐. 中心 人物로는 全琫準․孫和中․金開南․金德明․崔景善 等 五人이잇섯다.

동학농민군이 고부관아를 점령한 후 백산으로 돌아와 다시 봉기의 뜻을 널리 알리니, 호남은 물론 전국이 백산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백산은 고부 관아 점령 이전부터 동학농민군이 머물렀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백산에 모인 주요 인물은 전봉준․손화중․김개남․김덕명․최경선 등 동학농민혁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끈 다섯 지도자였다. 사람들은 이들을 동학농민혁명 5대 지도자라 부른다.

일로붓허 聲聞이 浪藉하야 全羅道 五十三州는 아니 ㅅ더드는 곳이 업시 東學黨의 氣勢는 漸漸擴大되여 古阜로 모여드는 者 날로 數千名에 達하야 白山天地는 人山人海로 數萬 群衆의 包圍 中에 잇서 정말 白山이란 地名을 울엿섯다.

이로써 소문이 널리 퍼져 전라도 53개 고을 중 동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동학당의 기세는 점점 확대되어 고부로 모여 드는 군중이 늘어나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에 백산은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으로 둘러싸였고, 백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산이라는 지명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얀 농민복은 입은 수많은 군중이 모였고, 그 광경이 마치 하얀 산처럼 보였다고 해서 백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학사에 기록된 백산 지명 유래

『동학사』의 이러한 기록과 더불어 백산 현지는 물론 인근의 정읍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 하여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정리한 대표적인 향토사학자가, 지금은 고인이 된 『갑오동학혁명사』의 저자 최현식 선생이다. 최현식 선생은 생전에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은 백산대회로 정리하였고, 당연하게도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은 백산대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1968년부터 정읍에서 시작된 지금의 「황토현동학농민혁명기념제」가 1회부터 3회까지 백산대회에 맞추어 개최되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었다.

박대길(부안군/문학박사)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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