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제목 이외에 두 개의 부제를 달고 있다. ‘소년 십자군’이라는 부제는 본문에 제시된 나이 어린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몬 상황의 부조리함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쓰였으며, ‘죽음과 억지로 춘 춤’이라는 부제는 주인공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지역 포로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는 동시에 전쟁의 비극을 비유적으로 차용한 제목이다. 때문에  『제5도살장』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건축물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전을 주장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의미를 지닌다.
보니컷이 창조한 빌리는 파괴의 도시 드레스덴 독일의 남동부 엘베 강변에 위치한 공업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ㆍ영국군의 공습을 받아 도심전체가 불바다를 이루었으나 전후 서서히 복구됨. 고전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많은 문화재가 있어 예술과 음악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독일의 피렌체’라고도 불림.
에서 정신적 평화를 주는 천국의 상태로 순례하는 현대판 순례자로 볼 수 있다. 빌리는 고통을 당하는 현대인의 대변자이다. 죄 없는 빌리가 신경쇠약에 걸리고 가끔 발작적으로 눈물을 흘린다. 이에 반해서 인간가치에 대해 냉담한 룸후르트 교수는 역사를 왜곡하면서도 추호의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빌리’ 같은 인물이 불필요함을 주장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병치시켜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또한 빌리가 시간여행을 하고 환상적 혹성에 납치되는 사건의 설정은 20세기 현대 삶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한다. 소설 속 트랄파마도어 신경증을 앓는 소설 속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과거와 미래로 시간을 넘나드는 외계행성. 이 행성의 우주인들은 모든 순간이 영원하다고 여기며 또한 모든 순간을 한눈에 볼 수 있음.
의 설정은 일종의 거울장치로서 순진한 사람을 허울 좋은 이념 하에 살해한 드레스덴 파괴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보니컷이 창조한 환상적 요소는 우리의 삶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고 과거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자기 반성적 문학장치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비현실적 요소의 사용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참여임을 역설적으로 반증 해준다.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공상적 이야기 형식은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매체로서 좋은 문학적 장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 빌리는 검안사로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데 단순히 잘못된 시력을 고쳐주는 물리적 치료뿐 만 아니라 현실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고통당하는 현대인들을 치료하는 정신적 치료도 함축하고 있으며, 지구인들의 영혼에 맞는 렌즈를 처방해준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 점에 주목해서 토니 태너(Tony Tanner)는 “빌리가 지구인의 시간관을 버리고 트랄파마도어 인식의 새로운 시간관을 제시해서 지구인 모두에게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게 하려는 것은 그의 직업과 보조를 맞추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빌리는 태너의 지적처럼 검안사로서 물리적 처방뿐만 아니라 트랄파마도르에서 배운 시간관을 가지고 지구인의 오류를 바로 잡아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가 지역신문에 기고하려고 작성한 편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트랄파마도어인에게 과거, 현재, 미래는 영원하며 보고 싶은 순간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지구인의 과거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지구인들이 장례식에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된다. 나아가 죽음 앞에서 종교적 의식이든 아니든 “뭐 그런 거지”(so it goes)란 체념적 표현으로 슬픔을 극복한다. 이 표현은 265페이지에 불과한 적은 분량의 소설 중에서 무려 100번 이상 등장하는 용어인데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죽음을 언급 할 때마다 “뭐 그런 거지.”를 허사처럼 끼워 넣은 것은 어쩌면 냉소적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형식적 차용이지 싶다.
작가 보니컷은 세상은 부조리하고 인간들은 그 속에서 자유 의지를 갖지 못한 채 고통과 혼돈의 삶을 살아간다고 소설을 통해 전제하지만,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끊임없는 애정과 연민, 인류의 가족적 연대와 사랑으로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작품을 통해 미래 인류문명을 비관적으로 예견하며, 급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 가운에서 직면하게 되는 인간 생존의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인류의 미래에 단순한 비판이나 체념적 비관이 아니라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의 메시지는 현실의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계시록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비로소 가을이다. 매미울음소리가 힘을 잃어간다. 이는 소멸의 징후가 아니라 이어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리니, 이 가을, 비관과 절망 그리고 무릇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 한 권을 들고 치유의 과정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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