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또'의 주인공 김귀식 씨

"이틀 만에 쌍둥이 소 세 번 연속 출산한 ‘소또’ 주인공"

쌍둥이 소를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그것도 단 이틀 만에 연속해서 출산시킨 축산농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틀에 송아지 여섯 마리를 얻었으니 로또 당첨이 부럽지 않은 화제의 축산인 김귀식(51) 씨를 만나기 위해 보안면 하립석리 수랑마을로 향했다.
1톤에 가까운 소를 키우는 농민이라는 선입견인지 우락부락한 모습을 떠 올렸으나 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시골 동네 형님이다. 환한 웃음에 어디선가 본 듯 한 서글서글한 인상, 호리호리한 몸매, 주저할 것 없이 오는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비결이 뭔가요”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는데)
800만분의 1이라는 로또 당첨 확률보다 높은 1700만분의 1이라는 ‘소또’의 기적을 일궈냈으니 특별한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7월 말에 태어난 쌍동이 소, 좀 더 건강한 형 소가 먼저 인사한다.

“소한테 물어봐야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문현답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본능적으로 숨겨진 비결을 찾아 그와 소가 맺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집안에서 기르던 소를 어릴 때부터 봐와서 인지 그에게 소는 낮선 동물이 아니었다. 학창시절에도 소밥을 주거나 똥을 치우는 뒷정리도 빠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형이나 누나가 주는 용돈을 아껴가며 모았던 돈 60만원을 털어 송아지 한 마리를 사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저 내 소라고 생각하니 마냥 좋았다고 회상한다. 물론 축사는 아버지 것이다. 사용료라고 딱히 정하지 않았지만 내 소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아버지 소 20마리도 열심히 키웠다. 소 사육의 기본 지식도 쌓이고 매일매일 크는 내 소를 보는 재미도 커갔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키운 소를 팔았더니 송아지가 3마리로 불어나는 기쁨도 알았다. 내 소 3마리를 아버지에게 맡기고 군에 입대했다.
세상은 쓰다. 제대하고 보니 3마리는 9마리로 불려 있었다. 아버지에게 내 소를 달라고 했다가 “그동안 너 키운 값이다”고 몰수를 당했다. “당시에는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했죠, 하지만 소 키우는 것이 어지간한 정성 없이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버지가 ‘홀로서기 해봐라’ 하고 준 쓴 약이라고 생각했죠”
부모님 소인지 내 소인지 구별 없이 부지런히 키웠다. 잘 키우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건강하고 우량한 소를 키우기 위해 각종 병에 대한 지식을 늘려갔다. 직접 혈관을 찾아 링거주사도 놓을 수 있게 될 때쯤 어지간한 병은 증상 초기에 알아채는 눈썰미도 생겼다. 더불어 어떤 송아지가 좋은 소인지 구분이 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고 땀을 흘릴수록 실력은 늘었고 폐사율은 줄었다. 자연스럽게 소도 늘고, 내 몫도 늘고, 모든 것이 늘었다.

쌍둥이 소를 어미소가 바라보고 있다.

그는 소 생육조건에도 관심을 가졌다. 신식 시설만으로는 양질의 소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자동화된 시설은 사람만 편리 할 뿐이었다.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축사 증축을 서둘렀다. 그 결과 1칸에 6마리씩 사육하던 것을 2~3마리로 대폭 줄이면서 고질적인 문제점인 밀식재배에서 벗어났다. 밀식에서는 할 수 없었던 온순한 소와 사나운 소의 분리도 가능해졌다. 무작정 마리수를 늘리기보다 조금 키우더라도 질로서 겨뤄보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결과는 적중했다. 장성이나 함평 우시장에 암소나 비육소를 가져가면 최고 등급을 밥 먹듯 받았다. “부안사람이 남도 가서 소 판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요. 하자가 있는 것을 얼렁뚱땅 팔아 치우려고 한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어찌나 심하던지”
텃새에 이렇다 저렇다 대꾸할 필요가 없었다. 소가 좋으니 등급도 좋고 돈도 많이 받았다. 의심은 부러움으로 변했고 비결을 묻는 질문에 답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우시장에서 소를 출하해 달라는 전화가 심심치 않게 올 정도였다. 소 키우는 실력은 북도, 남도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인정받은 셈이다.
입 소문 만이 아니었다. 사료회사에서 축협에 등록된 등급결과를 바탕으로 1년에 한 번씩 주는 최우수 등급 상을 17년, 18년,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사육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향이 가진 장점이 우수한 소를 키우는 데 이점으로 작용한다고 자랑한다.
그가 사는 수랑마을은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샘이라는 항시암 이라는 샘물이 있어 예로부터 가뭄에도 물 걱정 없는 동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물 수(水)에 밝을 랑(朗)을 써서 ‘수랑골’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물은 사서 먹을 만큼 중요한 것”이라며 “소들에게 먹이는 물은 동네에서 나오는 지하수고 이 지하수가 바로 마을이름과 같은 밝은 물이기 때문에 건강한 소를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물 좋은 동네라 그런지 예쁜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슬하에 1남 1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자녀는 모두 대학에 다니고 있고 그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효자효녀라고 한다.
4개동에 2,300평의 축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약 30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축산인으로 성공한 그도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다고 한다.

여물을 주고 있는 모습

“우시장에 가면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젊은 아들만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가진 꿈이 다른 아들을 막무가내로 후계농으로 키울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일궈놓은 기반을 보면 욕심을 감출 수 없다는 속내도 밝힌다.
“10년만 열심히 하면 너도 중소기업 사장이다” 새내기 축산인에게 늘 하는 말이다. 거꾸로 보면 정작 본인은 35년 가까이 했으니 대기업 사장 쯤 된다는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기자에게 되묻는다.
“이제 비결이 뭔지 알겠어요”
“글쎄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뭐긴 뭐겠어요 그냥 꾸준함이죠.”
“한 우물만 파다보면 나만이 볼 수 있는 눈이 생겨요. 그 눈으로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좋은 소도 보이고, 두 쌍둥이, 세 쌍둥이도 보이고, 황금 소도 보이고……, 딴디 쳐다보지 말고 쭉허니 혀 봐요”
마지막으로 조언을 끝으로 아까부터 울고 있던 송아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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