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마치고 마을회관 앞에서

의복리 서돈 마을, 공동체 살리는 희망의 신호탄 쏴

“이런 것도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계화면 의복리 서돈 마을 김두영(48) 이장은 며칠 전 마을에서 있었던 작은 움직임이 과연 자랑할 만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보화마을이니 체험마을이니 하는 억 단위 마을 사업에 선정된 것도 아니고 몇 백만 원하는 장학금을 기탁했거나 이웃돕기에 성금을 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을사람들이 마을을 지켜보겠다고 스스로 나선 일이 당연하기도 하고 자랑하기에 쑥스러운 일로 생각했다.
서돈 마을의 작은 움직임은 새벽에 시작됐다.
허투루 쓰면 1년 농사 망친다는 여름 새벽시간에 김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 10여명은 장 씨 할아버지 마당에 모였다.
모인 이유는 이들의 손에 들린 도구를 통해 알 수 있다. 동네에서 여장부로 불린다는 마을 부녀회 백옥순(70) 회장의 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 있다. 함께한 부녀회 회원들 손에도 대걸레며 손걸레, 쓰레기봉투 등 각종 청소도구가 가득하다.
이들은 마을에서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직접 찾아가 도와주는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마을 사람들이다. 오늘은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살고 계신 장 씨 할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

집안을 치우고 이불과 옷가지를 정리하는 마을지킴이 회원들

청소가 시작되자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 살림 경력이 40년, 50년을 넘어선 탓이다. 바늘귀는 못 뀌어도 창문 틈에 낀 먼지는 보인다. 그간 쓸어 담은 쓰레기 양만해도 석불산 보다 조금 작다. 허리가 조금 굽고 힘이 좀 없을지 몰라도 걸레 잡은 모습이나 빗자루 질 품세는 어느 누구 못지않다.
청소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장농을 열어 이불을 털고 옷장을 열어 세탁기도 돌린다. 척보면 다 알아 숨겨진 양말이나 속옷도 금세 찾아낸다. 냉장고 정리는 말하면 입만 아프다.
트럭에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등 청소 후 뒷정리는 힘쓰는 남자들이 맡았다. 인건비는 모두 시원한 물 한잔으로 퉁쳤다.
이날 장 씨 할아버지네 집을 치우는데 무려 2시간 반을 넘겼다. 치워야 할 것이 많아서가 아니다. 더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회관에 모여 아침을 함께 해먹고 서돈마을 지킴이의 첫 활동을 마무리 했다.

백옥순 부녀회장과 김두영 이장

이들의 봉사가 기존에 행정에서 해오던 청소사업이나 사회단체가 하는 봉사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 대상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서돈 마을 지킴이들은 행정이 분류한 수급자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김 이장은 “기초 생활 수급자로 등록되지 않은 어르신은 따로 지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의 주거개선 도우미 같은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행정 자료를 기초로 봉사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기존의 행정 지원은 다분히 금전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어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행정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속사정을 잘 아는 마을 사람뿐이라고 말한다.
백 부녀회장은 “수급자이건 아니건 모두 다 한동네 사람들인데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안 도와줄 수 없다”며 “아직 힘 쓸 만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 나름대로의 기준과 방식으로 누구네 집을 도울 것인지 말 것인지를 회관에서 함께 결정한다”고 말한다.
주민들 스스로가 문제점에 공감하고 대안을 도출하고 마을 회관이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의견을 공유하는 작은 단위의 민주적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 회관에 모인 주민들 대부분은 이장과 부녀회장 칭찬에 망설임이 없다. 한 분당 한마디씩 던진다. “우리이장은 다 잘 혀”, “젊지”, “잘생겼지”, “야무지지”, “못 허는게 없어” 이장 칭찬이 끝나고 부녀회장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부녀회장이 뭐 허라고 허면 다 혀야 허는 것으로 알어”, “안 허먼 혼 날라고”, “어디 내놔도 빠지질 안 혀”, “잘 헝게 테레비도 몇 번나왔지”
마을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에 대한 신뢰가 자리 잡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있던 마을 주택 화재도 주민들을 결속시키는 역할로 작용했다. 피해 주민의 집을 청소하는 등 여러 가지로 힘이 돼주면서 공동체의 소중함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공동체의 필요성을 공감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지킴이 활동이 계속되길 바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공동의 공간인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이번 활동으로 마을 전체가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적 움직임이 마을을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된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지킴이 하고 나니 뭐가 가장 좋았나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허고 나니 내 집 마냥 개운허니 좋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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