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돈이 많고 능력이 좋고 권력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경제력, 군사력이 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나라가 도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선진국이라 불릴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과거의 과오가 있는데도 이에 대해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보상 아닌 보상만을 해 준 채로 과거를 묻으려는 태도는 분명 선진국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한 모습들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자국으로 인해 청춘을 잃고 강제로 전쟁터, 혹은 일터로 가게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이에 대한 보복적인 의미로 우리나라에게 수출제한을 통해 경제적 타격을 주려는 모습은 충분히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아픈 과거의 기억을 물려받은 세대이다. 일본은 우리 민족이 소위 ‘냄비 근성’이라며 이 불매도 얼마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일본과 동등한 관계로 봤다면, 그렇게 우리 민족 전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과 이러한 굴욕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트스트림 펜을 쓰고 토요타 차를 타고 친구가 일본 여행을 갔다 오면서 사온 로이스 초콜릿을 먹으며 일제에 돈을 쓰고 있었다. 물론 자기가 원해서 일제를 산다고 하면 막을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지금까지처럼은 안 된다.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에 인륜을 저버린 죄를 지은 가해자이며 그 피해자분들이 지금도 두 눈 꼭 뜨고 지켜보고 계신다. 일본은 부도덕에 대한 대가를 분명히 치러야 한다.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한 측면뿐만 아니라, 부도덕에 대한 대가가 크다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도.
혹자는 우리가 불매한다고 해서 일본과 같은 경제 대국에 어떤 큰 피해가 가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확실히 우리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 나라라고는 해도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한 발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수출 제한 때문에 어떤 시련이 닥쳐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선 안 된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행동해야 한다. 우리보다 더한 시련 속에서 약 100년 전에도 많은 이들이 여러 방면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툰드라 눈밭과도 같은 차가운 현실에서 그들은 독립에 대한 의지라는 꽃망울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육사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선택해 문학 수업시간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육사 시인은 지금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광복에 대한 확신을 거두지 않고 시 ‘꽃’에서 말한 것처럼 광복에 대한 의지라는 꽃을 피워 내셨다. 우리 세대는 그들이 선물해준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일본에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 완전한 불매가 힘들다면 제품 하나를 바꾸기만 해도 좋다.
우리는 윗세대가 선물한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육사의 ‘꽃’은 선생이 이국땅 북경에서 옥사하신지 75년 만에 다시 핀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의 ‘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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