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안 했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도 헌법 제1조는 그대로였다

30명의 헌법 기초위원 맨 앞줄 이승만 국회의장 좌우에 신익희 부의장, 서상일 헌법기초위원장의 얼굴이 보인다.

생일에 부치는 헌시
헌법에도 생일이 있다. 1948년 5월 10일의 총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198명은 지난 날 총독부 자리요, 얼마 전까지 미 군정청 천정이 뻥 뚫린 대회의실에 모인다. 이곳이 헌법의 산실이다.
5월 30일 소집된 국회는 각 도별로 안배한 30명으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 헌법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헌법기초위원장에는 대구의 한민당 출신 서상일의원이 맡았다. 내 손으로 헌법을 만들고 내 손으로 나라를 세우게 된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들의 애국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헌법에 관한 한 다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먹통이었다. 웬만큼 법률 식견이 있는 10명의 전문위원들이 딱 붙어 입법 작업을 도왔다. 보성 전문과 고려대학에서 법학강의를 한 유진오를 비롯한 지난날 고등문관 출신 총독부 중견 관리가 동원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과도입법의원에서 일한 사람들이었다.
헌법을 만드는 일은 마치 맞춤형 목조 건물을 짓 듯이 눈 번쩍하는 사이에 뚝딱 해치웠다. 6월 2일 헌법기초위원회로 넘긴 헌법 초안(이른바 유진오 안)은 40일만 인 7월 12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다. 실제 태어난 날은 이날이오, 공포한 날이 7월 17일이다.
1949년 7월 17일 헌법의 첫 생일을 맞아 정부는 이날을 제헌절로 정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한 3.1절,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절, 단군임금이 나라를 세운 10월 3일의 개천절,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한글날’과 함께 국경일로 정했다. 이 5대 국경일 가운데 제헌절은 어느 날 갑자기 ‘놀지 않는 국경일’로 밀려났다. 노무현 대통령 때다. 한쪽에선 노대통령을 제헌절을 없앤 대통령으로 몰아세운다. 하루 쉬는 정도가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50여일이나 쉬도록 권한 ‘토요 휴무’의 공은 부러 외면한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학생과 시민의 4.19 데모

폭군들의 헛소리
있는 말, 없는 말을 끄집어내어 분칠을 하는 것이 제헌절을 맞는 독재 폭군들의 수법이었다. 첫돌은 그런대로 생일다웠다. 제헌 국회의원들은 그 험한 고비를 넘으면서 한반도 남쪽에서나마 공산주의 아닌 친미 반공정권을 세운 것을 대견해 했다. 헌법에 따라 정부를 세운지 2년이 되기 전에 북한 공산군이 남쪽으로 쳐들어왔다. 정부는 수도 서울을 버리고 대구로, 부산으로 피난했다.
이런 난리 속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 짓밟기를 잔칫집 떡 주무르듯이 했다. 4년 임기가 끝나가는 1952년 여름 국회에서 뽑도록 된 선거에서 이승만은 재선의 가망이 없었다. 그는 평온한 부산지역에 비상계엄을 펴고 해괴한 ‘발췌 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바꾸어 권력을 유지했다. ‘발췌 개헌’이 무엇인가. 헌법을 개정하는 데는 재적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의결정족수 뿐만 아니라 개정안에 대한 일정 기일의 공고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야당의 의원내각제 개헌안에 정부가 낸 직선제 개헌안 조항을 적당히 이리저리 섞어서 양두구육으로 만든 조항을 개정안이라고 우겨 통과 시킨 것이다.
이러한 불법은 1954년의 ‘4사5입’개헌으로 얼룩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마침내 3.15 부정선거를 감행, 쫓겨난다. 그때도 제헌절 경축사만은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미사여구로 가득 채웠다.
쿠데타로 합헌정권을 뒤집어엎은데 이어 3선 개헌도 모자라 국민의 대통령 선거권을 송두리째 빼앗은 이른바 유신시대의 박정희의 제헌절 경축사는 다시 되씹어 볼만큼 파렴치의 극치다. 남북의 긴장완화를 내세우며 ‘유신의 벼락’을 때리던 시기다.
“우리는 지금까지 헌정 제도를 운영해오는 과정에서 과연 대의제도의 이름으로 비능률을 감수했던 일은 없는지 자유만을 방종스럽게 주장한 나머지 사회기강의 확립마저 독재라고 모함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가 마치 분열과 파쟁을 뜻하는 것으로 착각한 일은 없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광주 학살의 만행을 저질은 전두환의 제헌절 경축은 어떤가.
“우리는 이미 지난해 가을 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참여 속에 새 시대의 참신한 제5공화국 헌법을 확정하고 정의로운 민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힘찬 전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헌법이 무엇인가
누가 헌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한다. “헌법이 헌법이지!” 그 다음 헌법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면 “그까짓 게 뭐야, 너는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하며 귀찮게 여긴다. 하물며 이 수천수만 가지의 법률과 법령, 규칙 따위 모든 법규의 원천인 그 형태도 위력도 알 수 없는 헌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건 자기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엉뚱한 질문으로 받아드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정말 헌법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일까.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민 누구에게나 미친다. 국내에 사는 국민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 박혀 있더라도 국민이면 용하게 적용한다. 헌법은 또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 사는 사람이면 그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릴 것 없이 적용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우리 국민이고 어디까지가 우리 영토냐에 이르면 복잡한 국적법이나 영토에 관한 여러 법률을 따져 보지 않으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헌법은 독재자에게는 독 묻은 창이오, 민중에게는 방패였다. 위에서 쏟아지는 것은 창만이 아니다. 그럴듯하게 포장한 속임수가 있다. 민중의 방패는 창을 견디기에는 낡기 일쑤다. 거기에다 저들의 협박과 유혹, 돈과 인정에 끌려 밀고와 배신으로 전열은 분열 된다. 어쩌다 민중이 이기는 때도 있지만 그 기간은 짧고 기억은 희미하다. 헌법을 독재자의 전용물로 생각하며 민중과는 관계없는 흉물처럼 혐오한다. 71년을 이어온 우리 헌정사의 벌거벗긴 모습이다.
지금 이 좁은 지면에 그들 독재자들의 잔혹 사를 까발릴 생각은 없다. 도리어 그들이 헌법 생일날에 ‘친애하는 국민’을 향해 호소하고 간청하고 강조하는 그 경축사를 통해 그들의 간교함을 엿보자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북진통일’, ‘반공’, ‘멸공’을 외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북대화’를 선전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던 독재자가 영구 독재의 편안한 잠에 빠져 초저녁 도원경에서 흉탄에 맞아 절명하는 비극을 보면서도 그 후예인 또 한 사람의 육군대장은 광주 학살을 감행하고 헌법을 짓밟았다. 1961년의 5.16 쿠데타와 1972년의 이른바 ‘10월 유신’이나 1980년의 광주 학살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그들이 그런 헌법 파괴, 그런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뻔뻔스럽게 헌법 생일날이라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하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뱉어내는 그 소리를 그저 조용히 다시 들어본다. 그들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날만 새면 ‘국민총화’를 외쳤다. 밤낮없이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7월 17일 헌법 생일날 하루만이라도 우리는 이 헌법을 이만큼이라도 지킨 사람이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된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군을 부둥켜 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첫 마디다. 이 헌법 제1조에 쓰여 있는 대한민국과 민주공화국이라는 두 낱말은 마치 자기 이름처럼 소중하게 간직 되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름처럼 인상이 같고 평판이 처음처럼 비슷한가. 이름이 변하지 않았다 해서 헌법의 실체마저 변하지 않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실없는 사람들이 이승만 시대를 제1공화국(1948-1960), 장면 시대를 제2공화국(1960-1961), 박정희 시대를 제3공화국(1961-1979), 전두환 시대를 제5공화국(1980-1988) 노태우 시대를 제6공화국(1988-1893)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렇게 부르기만 하면 공화국, 더구나 ‘민주공화국’이 되는 것인가. 이승만 초기나 장면 정권에게 민주공화국의 칭호를 부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제도화한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노태우의 소수에 의한 집중 투표를 민주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양두구육이다. 그런데도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헌법 제1조는 샛별처럼 헌법의 첫머리에서 빛난다. 이마를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헌법이다. 헌법의 이마에는 뿔이 없다. 그 뒤통수를 보거나 창자를 뒤집어 보지 않고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이 헌법이다. 
무엇이 민주 공화국인가. 민주주의는 시련 받고 있고 공화국은 아련하다. 헌법 제2조에 ‘민주공화국’이 어떤 나라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쉽게 썼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처럼 분명한 말이 어디 있는가. 이 헌법 조문 한두 개 보고 ‘국민’이라는 사람들은 좋아했다. 이 사이 압제자들은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쿠데타를 하고 학살을 일삼았다. 아니 ‘국민투표’라는 꼭두각시놀음으로 그들의 반민주, 반 헌법 사태를 합헌으로 호도했다. 우리가 겪은 한국 현대 헌정사의 추악한 단면이다. 우리 다 같이 헌법을 생각해야 할 차례다. 헌법은 그 땅에 사는 그 시대 사람들의 뭉뚱그려진 생각과 목표를 담은 문서다. 좋은 말을 여기저기서 주어다 얽어놓는다 해서 제 뼈와 살이 되지는 않는다. 간절한 소망과 영혼을 문서에 담기에는 부적절하다. 끓어오르는 열정이 지속되지 않고는 헌법은 담보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수에 대한 존중이다. 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을 때 다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가치가 말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보되지 않고서는 참다운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이라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독립전쟁을 치루며 헌법을 만든 지 얼마 뒤인 1791년 정치와 종교의 분리, 신앙과 표현의 자유, 청원의 권리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를 채택한 것은 적절하고 통쾌한 일이었다. 또한 ‘개인의 존엄’을 규정한 1948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을 우리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
제1조는 장엄하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 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그 놈의 헌법’ - ‘두 얼굴의 헌법’ 
필자는 2013년 8월 ‘두 얼굴의 헌법’을 출판했다. 우리 헌법 탄생의 실상과 독재 정권의 민낯을 그린 이 책의 원 제목은 ‘그 놈의 헌법’이었다. 권력자들은 ‘이 놈의 헌법’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그놈의 헌법’으로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는 논법이었다. 그 실상을 국회 속기록과 관계자의 증언으로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목이 너무 속되지 않나, 두 얼굴의 헌법’이면 어떻겠나 하는 출판사 편집자의 요청으로 책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 생각하면 야누스처럼 헌법에 두 얼굴이 있지는 않는 것 같다. 헌법을 보는 사람들의 처지나 생각에 따라 달리 보일 뿐이다.

가장 오랜 장수 헌법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을 견디어 온 장수 헌법이다. 이승만은 집권 12년 동안에 헌법을 두 번 바꾸었고 박정희는 18년 동안에 세 번 바꾸었다. 전두환은 국회를 해산하고 국보위라는 어용기관을 만들어 대통령 단임제 외에는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는 대통령 전권의 헌법을 만들었다.
지금도 영웅심에서 헌법 개정을 들먹이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화제를 삼기도 한다. 자신들이 만든 헌정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어떤 제도도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아니 권력층에 대한 방종과 오만에 쐐기를 박지 않는다면 어떤 헌법도 기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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