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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논단] 집단 히스테리에 걸린 한국사회 2균형 잡힌 시각 잃은 언론 없느니만 못해

평소 전셋집에 살면서 연구원들에게 라면밖에 사줄 수 없었던 ‘가난한’ 과학자 황우석. 그의 대변인을 자처하던 언론들은 황우석 영웅 만들기에 바빴다. 사실 그는 ‘가난한 과학자’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경기도에 100억대의 땅을 가지고 있는 땅부자이며, 20여 년 전부터 서울에서 가장 부자들이 모여 사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현재는 강남구 논현동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 동안 정부가 황 교수팀에 지원한 연구비는 총 515억원이다. 이 가운데 건물 건립 등 연구시설 지원비를 빼고 순수 연구비로 지원된 돈은 156억원이다. 황우석은 정부 지원금 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후원금을 모아 왔다.

후원회를 통해 2005년 말까지 33억원이 모금됐다. 이 가운데 19억원이 지출됐는데 구체적인 사용 내역은 후원회 사무국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황우석이 돈을 요청하면 지출할 뿐 영수증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 대기업들로부터도 수십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써 온 것으로 드러났다. 많게는 1천억원대에 가까운 그 많은 돈을 어디에다가 썼는지 감사원 감사와 검찰은 밝혀야 할 것이다.

젊은 과학자들에 의해 진실이 밝혀진 것처럼 조금만 조사하면 알 수 있는 이와 같은 사기극은 언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위 의학, 과학전담 기자를 둔 언론사들은 황우석 장단에 맞춰 춤추기에 급급해 제대로 된 분석 기사 한번 없이 베껴쓰기에 바빴을 뿐,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에는 네티즌을 자극하고 집단 린치를 감행했다.

같은 시간 우리 사회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달 전 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홍콩으로 원정투쟁을 떠났던 농민 11명이 이제사 석방됐다. 한국 농업의 위기를 알리고 농민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 국익에 반하는 ‘역적질’이라도 되는가? 구금과정에서 한국영사관은 ‘정부의 위신’을 이유로 신원보증을 서주지 않아, 자국민들이 구속되도록 했다. 결국 1차 판결 이후 천주교 홍콩주교와 현지 교민이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보석으로 풀려 나올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 5일부터 홍콩에서 천막을 치고 무죄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해왔다. 홍콩 시민단체가 농성장 앞에 설치한 모금함에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지금까지 10만 홍콩달러(우리 돈으로 약 1억3천만원)의 성금이 모였고,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에 3천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무책임으로 일관하며, 최소한의 도움조차도 거부한 것이다. 이들의 귀국을 위해 홍콩정부에 보증해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재판을 받으러 다시 가지 않을 경우 국제적인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궁색한 변명을 들어 거부했다. 대만정부가 본국인에 대한 즉각적인 신원보증을 통해 불구속 상태로 귀국 후 조사를 받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농민시위가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분위기로 몰아가기 위해 사실을 입맛에 맞게 골라 쓰며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에는 관심조차 없다.
농민의 죽음 앞에 깊은 반성과 재발 방지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경찰들은 어떠한가?

경찰청장은 서울시 경찰청장을 사퇴시켜 부하를 면피용으로 내몰더니,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채우겠다고 버티지 않았던가? 퇴임식은 반성과 자숙은커녕 폭력시위 근절, 억울함으로 채워졌다. 이제는 ‘방패로 시위대를 찍는 듯한 행위는 공격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시위대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위한 처절한 몸짓’이라고 까지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리 집회하고 있는 농민들을 ‘공격’하여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무방비상태의 노인들을 곤봉과 방패로 무차별적으로 가격하던 그들의 폭력에, 현장에 있던 이들은 공포에 떨어야했다. 부안에서 저지른 폭력이 서울이라고 다를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역시 현장을 목격했던 언론은 사퇴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경찰들의 목소리만 대변했다. 시위전담복장과 방패, 무기를 갖춘 젊은 정예부대와 늙은 노인들과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모름지기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듯이, 정부도, 정치도 그 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다. 언론이 관점을 갖는다는 것이 진실을 왜곡하고 입맛에 맞게 골라 쓰라는 의미는 아니다. 언론 본연의 역할인 비판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잃은 언론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히스테리에 걸린 한국사회 치유를 위해 청산해야할 1호의 대상이다.
 

이현민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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