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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101> 부안 길을 걸으며, 들시암 물을 함께 마시니

시간 나는 대로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새롭다 하는 곳을 돌아다녔다. 어른들 얘기에 따르면 역막살이 끼어선지 어렸을 때부터 돌아다니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다. 나이 먹어서도 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아들 걱정을 하시며, “너는 왜 맨 날 한다는 것이 길바닥에 돈 깔고 댕기는 일만 흐냐 ~ 이.” 특별하게 대답할 말씀이 없었다. “역사 흔 사람들은요 요로케 돌아다니는 것이 일이고만이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동의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걸어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차도 별반 없었고 차 시간을 오래 기다리기에는 좀이 쑤셔 못 견뎠다. 동진면에 있는 외가 집에 갈 때는 낭주식당 앞에 있던 부안배차장에 내려서 동초등학교(지금의 교육문화회관) 운동장을 가로질러 성황산 중턱의 황계재로 해서 지너리 방죽을 옆으로 지나갔다. 별로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우리 또래들은 다들 걸어 다니는 것이 당시 생활이었다.
위 그림은 2016년도에 장신초등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걸었을 때의 사진이다. 이곳은 적벽강인데 물이 빠졌지만 미끄러워서 걷기에는 조심스러웠다. 조금 남아 있는 바닷물이 재미있는 그림자를 바위에다 만들었다. 지인은 이곳을 ‘고흐의 해변’이라 이름 지었다. 해질녘이면 물감을 잔뜩 품은 해가 이 해변을 고흐의 미술작품처럼 다양한 색깔로 덧칠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명에 나도 공감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면 적벽강은 이름 하나를 더 얻는 셈이다. 장신초등학교 학생들과 점심을 먹을 때, 1학년 아이 하나가 장래 희망을 의사라고 말했다. 할머니를 고쳐주려 한다고 했다. 근데 이 아이의 장래 희망은 하나가 아니었다. 과학자가 추가되었다. 할머니가 무릎 때문에 걷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과학자가 되어서 할머니에게 필요한 맞춤형 로봇 같은 것을 만들어주겠다는 당찬 희망이었다. 병든 할머니의 돌봄을 받는 농촌 가정의 현실과 아이의 희망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부안 사람들과 어울려서 많이 걸었다. 특히 위도는 곳곳에 비밀스런 보물이야기를 숨겨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톡 건드리면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지역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부안은 걸을 곳이 많다. 교사들과도 여러 번 걸었지만 늘 새로운 길이 우리를 기다렸다. 걸으면서 지역사 이야기를 곁들이는데, 별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들시암을 사전에 찾아보니, ‘마을에서 공동으로 물을 길어다 먹는 샘’이라고 되어 있어 마을 공동우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들시암에서 물을 함께 긷고 나누듯, 지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길을 걸으며 기록으로 남길 사람들을 기다린다. 아직도 부안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사를 아우르는 교과서 한권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일을 함께할 동지들을 만나고 싶다. 지역에 대한 우리들의 소소한 지식은 듣거나 배운 것이니, 이런 지식은 개인 우물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공유해야 할 들시암인 것이다.
모든 것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대부분의 지식이나 경험은 길 위에서, 특히 현장에서 얻은바 컸다. 이번호의 연재 글을 씀으로 ‘부안문화의 밥과 꽃’을 마무리 한다. 새로운 필자에게 참신한 지역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이즈음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늘 아쉽고 갈급한 마음으로 2년여를 지나왔다. 배려한 신문사에 감사드리며 독자여러분께 큰 절 올린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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