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정년은 없다며 환하게 웃는 73세의 김 박사. ⓒ장정숙

“일흔 세살의 현역, 의사에겐 정년 없다”

아시아 최초의 인슐린분비 췌도 이식

진료와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김광원 박사. 만 73세인 지금도 현역이다. 경희대 의료원과 성균관대 삼성의료원 의사를 거쳐 2012년부터 인천에 있는 가천대 길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암·당뇨를 연구하는 연구원장 같은 책임자다. 부안군 행안면 송호 부락 출생으로 부령김씨, 2남 1녀의 아버지, 행안초, 부안중 16회, 전주고 42회, 서울대 의대 26회, 모교인 서울대에서 석사와 박사, 전공은 내분비 내과, 암과 당뇨 갑상선 등 분야에서 명망이 높다.
1999년 인슐린 분비 췌도 이식에 성공함으로써 당뇨병 치료에 큰 획을 그었다.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초의 성과였다.
작달막한 키에 항상 미소를 띠며 조용한 말씨로 환자를 대한다. 인터뷰를 요청한 필자와도 그런 모습으로 만났다. 6월 마지막 주말, 오후 5시 여의도 중국집에서. 다음은 9문 9답의 줄거리다.

시야가 달라지면 시각이 달라져

1. 지금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집 찾는데 힘드셨지요?
“낮에 두 세 시간 청계산을 올라갔다가 집에 와서 샤워 하고 오는 길입니다. 지하철 9호선 출구를 확실히 알았어야 하는 건데 짐작만 하고 나오다보니 그게 아니어서 좀 당황했지요”

2. 운동은 어떤 운동을 하세요?
“가끔 오랜 친구들끼리 테니스 하지요. 나지막한 산에도 더러 가고……, 골프 같은 건 어려워요. 하루 종일을 쓸 만한 시간도 없고 또 약속을 꼭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있고 해서”

3. 산에 가면 뭐가 좋습니까?
“다들 아실만 한 얘긴데 우선 시간을 자기가 정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자기대로 자기 발걸음으로 한걸음 옮기지 않습니까, 흔히 주변의 눈치 보며 주변 하는 대로 따르느라 끙끙 앓는데 산은 이런 부담에서 해방시켜 주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200미터 높이든 300~400미터 높이든 위로 올라가면 시야가 넓어지지 않습니까. 보이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각도가 달라져요. 거창하게 뭐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저 같은 의사로서는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겁니다”

최근 가천대 길병원에서

4. 어떤 연유로 의대로 가게 됐는지, 고등학교 성적이 아주 좋았던 모양 이지요.
“괜찮았어요. 서울대 법대나 상대, 공대, 의대 같은 델 많이 좋아했는데 저는 어쩐지 의과대학 가서 의사 되면 좋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선 취직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거기에다 다른 직업들은 사회적으로는 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이지만 상대방 입장으로 보면 어느 한쪽에선 불만을 갖게 하는 그런 면이 있지 않습니까.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회계사나 은행 간부나 기술자나 과학자 까지도…… 그때는 뭐 이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어떻든‘의사는 인술’이다 하는 유달리 자부심 같은 게 있었지요”

5. 해보시니까 괜찮아요?
“허허, 저한테는 아주 좋은 직업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욕심 갖지 않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보람을 느꼈으니까요. 더러 의과대학 학장이나 병원장의료원장 같은 행정직을 맡지 못 한 걸 아쉬워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런 자리는 거기에 맞는 적성이 요구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항상 새로운 일을 찾아 정진해 왔고 또 그런 책임이 맡겨졌지요. 삼성의료원에서 초창기부터 10여 년 동안 내분비 내과과장 자리를 맡아왔지요. 제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분비 내과는 김 아무개다’고들 했으니까. 학회 책임도 많이 맡았고…… 골대사학회, 당뇨병학회, 내분비학회, 비만학회, 내과학회, 뭐 이거 다 잡무로 치는 건데……”

6. 어떻게 해서 내분비 내과를 전공하시게 됐습니까?
“대학원 때 지도교수가 이문호, 고창순 이런 선생님 들이셨습니다. 다 내분비 전공이지요. 고창순 선생님은 그 뒤 김영삼 대통령 주치의 지낸…… ”

7. 언제 까지 일 하시겠습니까 ?
“지금 같아선 80까지는 의사 일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진료는 그만한 체력이 뒷받침 돼야 하니까요. 하지만 의료연구나 사회복지 같은 연구는 그보다 한참 뒤에 까지 할 수 있겠지요. 요즈음 지식의 사회 환원이다 뭐다 하는데 그런 뜻보다는 일종의 사명 같은 걸 느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 추구하는 행복이 뭐든 간에 우선 건강해야지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가운데 보람을 느끼며 사는 그런 삶을 이루는데 제가 조그만 기여를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죽은 일본의 히노하라(日野原)라는 의사는 102세 장수를 누렸는데 90 몇 살까지 60년을 직접 의사 일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의료복지라던가 국제적 의료지원 등에 나섰었다. 역시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의 현역의사 40년을 합치면 100년을 봉사 했다는 감동적인 썩세스 스토리가 언뜻 생각났다. 그 히노하라 부자는 기독교계 대학인 ‘성루가대학’을 나와 병원장과 병원재단 이사장을 대를 이어 지냈다. 비실비실하며 여명을 지탱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뻘떡뻘떡하는 활기 속에서 생의 보람을 느낀 것이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출신의 부인과 유럽 여행 중

노인을 너무 빨리 만드는 것 아닌가              

8. 크게 보면 최근 20~30년 동안에 경제 사정이나 사회 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평균연령도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들 좋아 하는데 정작 사회나 국가적으로 보면 이 고령화 현상은 외로운 노인을 양산하고 세대 간의 심각한 갈등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고령사회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참으로 큰 문제지요. 우리 사회가 노인을 너무 빨리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건강이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60살이다 65살이다 해서 직장에서 쫓아냅니다. 거기에다 일률적으로 65세를 노인으로 규정하여 모든사회 정책 의료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능력 있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들의 희망과 욕구를 불러 일으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라가 이 노인들을 먹여 살릴 힘이 있습니까, 노인들에게도 자립심과 자활능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노인들 스스로도 수입이 적으면 적는대로 자기 형편대로 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9. 대단하십니다. 그냥 의학박사인 줄만 알았는데 ‘행복공장’불을 때고 계시는군요. ‘행복의 전도사’랄까.
“저 같은 경우는 어쩌면 나라나 사회로부터 여러 혜택을 선택받은 셈이지요. 그런데도 65세 정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치료, 교육, 연구 이 세 방면을 어떻게 묶어서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지금 가만히 보면 정부나 병원이나 사회단체나 전문가들이나 따로 따로 떨어져서 각개약진을 하는데 이를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그런 조직, 그런 기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규모가 작더라고 나부터 우리 대학부터 그런데 눈을 더 크게 떠야겠다 이런 이야깁니다”

소아과 의사처럼 자상한 진찰

말은 차분하고 조용조용하다. 하지만 정열이 넘치고 뼈가 있다. 그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더러 말한다.
“선생님은 차트 한번 훑어보고 얼굴 한번 쳐다보며 말씀 하세요. 환자의 표정을 마치 어린이를 다루는 소아과 의사처럼 자상하게 대하세요”라고. “진료는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입니다” 서로 마음으로 통하지 않고 어떻게 환자의 그 오묘한 핏속, 창자 속, 뼛속을 알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로 들렸다.
김광원 박사는 유달리 귀엽게 태어났고 복을 받았다. 김 박사의 부모(김종일, 김순녀)는 누나 다섯을 나은 다음 아들을 낳았다. 그 밑에 또 딸 둘, 1남 7녀. 정읍 소성에서 부안 행안으로 시집온 어머니 의성김씨는 무남독녀였다. 남편을 여읜 외할머니는 전답을 팔아 사돈네 집으로 들어왔다. 의성김씨 전답 팔아 부안김씨 주었다고 친정 쪽에서는 말이 많은데 줄줄이 딸만 나오니 그 모녀는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2남 1녀의 40대 의사 가정

부인 김 영(伶)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 장남 위(瑋), 차남 명(明), 장녀 소리(小里),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진보적인 한학자이자 변호사인 아이들의 외할아버지(김병휘)가 지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나와 승가대 교수이던 부인은 작년 2월 딸 소리가 떼어준 간이식 수술에는 성공했으나 지난 1월 유명을 달리 했다. 70세이던 부인은 돌아가시기 2주 전까지 강의를 멈추지 않았다. 그 장모님에 그 부인, 거기에다 그 딸의 그 열정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누구의 연구과제가 될 것인가. j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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