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설/칼럼 시사칼럼
‘청년’을 배려해야 하는 시대
  • 황재근 (전 부안독립신문 기자)
  • 승인 2019.06.18 16:57
  • 댓글 0

아마 인류사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이 배려의 대상이었던 적은 드물 것이다. 청년은 육체적으로는 인생의 절정기에 이른 시기이고, 정신적으로도 성장기를 벗어나 성숙에 들어서는 단계이다. 자연히 청년은 배려받기보다는 다른 세대와 계층을 배려해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한다’는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은 적지만, 육체와 정신의 젊음으로 그 자산을 확보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청년’은 어떤가? ‘청년정책’이 나타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근래에는 중앙정부부터 기초지자체까지 청년정책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늘어난다는 것은 청년이 배려의 대상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니, 청년이 정책적 배려 대상이라니?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몸 건강하고 젊은 친구들을 배려해야 한단 말인가? ‘나 때는 말이야’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기 전에 잠시만 기다려 주시라. 수십년 전 청년들과 지금 청년들이 무엇이 다른가 한번 살펴보자.
앞 세대의 많은 청년들은 젊은 시절의 고생을 바탕으로 자산을 쌓아 어엿한 기성세대가 됐다. 밑천이라고는 몸뚱하리 하나 뿐이었다. 요즘 청년들이 가진 것이 없다하지만, 어찌 앞 세대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요즘 청년들은 몸으로 자산을 쌓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사회가 저성장시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고성장시대에는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없던 자리가 새로 생겼으니 모두에게 승진과 임금상승의 기회가 있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 숙련된다면 어느 정도의 자산축적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의 시대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 동력이 없다. 경쟁에 뒤쳐진 산업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신산업의 일자리는 경력직들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진다. 젊은 시절의 노동으로 숙련을 얻을만한 자리가 별로 없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2년간의 경험만 쌓고 버려진다. 빈 자리는 다시 새로운 청년이 채운다. 2년짜리 경력을 갖고 경력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별로 없다. 다시 신입채용에 응시해 2년 정도 경력을 쌓으면 합계 4년 경력이다. 그런데 한 자리, 한 업무에서 4년은 아니니까 직장이나 직업에 따라서는 전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반절만 인정받을 수도 있다. 대부분 같은 업무에서 4년의 경력을 쌓는 것 자체가 어렵다. 영세 소기업은 어떤가?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일자리는 많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대부분 최저임금이다.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 이직률이 높기 때문에 회사는 숙련에 필요한 일을 맡기기 보다는 있는 동안 최대한 부릴 수 있는 단순업무를 주로 맡긴다. 단순업무이니 임금상승 폭도 높지 않고, 적체된 인력들이 직급과 직책을 차지하고 있으니 승진도 어렵다. 육체노동은 어떤가? 젊은 시절 몸의 건강함을 믿고 할 수는 있다. 그런데 10년 후는? 15년 후는? 숙련에 따른 임금상승과 직급, 역할 상승을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육체노동을 할 시간에 시험준비를 하는 것이 장기적인 기대소득을 높이는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청년들은 젊음을 팔아 자산을 축적해도 현재의 기성세대들만큼 모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전적인 자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숙련, 교육훈련, 인적네트워크 등 모든 분야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산을 모을 기회가 부족하다. 단적으로 말해, 오늘날의 청년들은 자신의 부모들이 벌어온 평생의 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연히 물려받는 자산의 차이가 청년들의 오늘뿐 아니라 노후까지 결정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 격차를 메우기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수저계급론’은 그래서 ‘세대론’과 밀접하게 이어진다.
인구절벽은 또 다른 문제다. 청년 인구가 줄어들수록 정치적 목소리도 작아진다. 정치권의 중장년, 노년층의 편향은 아주 오래된 문제이지만, 앞으로 더 악화될 문제다. 더 많은 유권자가 중장년, 노년인구로 들어가고 있으니 청년 당사자의 정치권 진출은 물론,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약도 줄어들 것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에는 항상 교훈이 있다. 오늘날의 기성세대는 앞 세대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의 경험과 자산은 오늘날 청년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된다. 그 좋은 말을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니라 ‘너희는 어떠니’로 시작한다면 좋겠다.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청년들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서로 오고가는 소통이 필요하다면, 그 물꼬는 기성세대가 먼저 트는 것이 더 쉽고 빠를 것이다.

황재근 (전 부안독립신문 기자)  ibuan@ibuan.com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