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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96> 홍성모 화가의 ‘행안 떡 방앗간’ 이야기

군부대를 지나 부안폐차장을 막 지나면 만나는 남산마을 가게의 4월 풍경은 벚꽃이다. 이곳에는 행안 떡방앗간, 푸른속셈교습소, 등대이발관, 남산슈퍼가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그리고 길 건너 앞에는 큼지막한 정미소가 자리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길가 50 여 미터에서 잃어버린 60~70년대가 아직도 숨 쉬고 있다. 이곳에 벚꽃이 활짝 피면 관심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잡아놓는다.
  도로 주변에는 진동리의 지석, 행산마을, 대초리의 송호, 송서, 대초마을이 있고 이곳의 중심은 남산 마을이다. 행안면 사무소와 행안 파출소, 행안 교회, 조금 떨어진 곳에 행안 초등학교가 자리하다보니 남산마을은 행안면 소재지였다. 지금이야 면사무소와 파출소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상당히 높았던 언덕길도 깎이고 도로도 몇 차례 확장되면서 변화가 컸다. 23번 국도가 지나는 이곳을 4차선으로 확대한다는 소문도 있어 도로의 확장에 따라 이 곳의 존폐가 달려 있기도 하다. 현재 이곳의 가게 중에서 그래도 활기를 띠는 곳은 단연 떡 방앗간이다. 이 집은 떡만 빼는 것이 아니라 고추도 빻는 등 기능을 더 가지고 있다.
  부안 출신 홍성모 화가가 작업하는 곰소에 갔다가 벚꽃 핀 행안 떡방앗간 그림을 보게 되었다. 자주 보던 거리의 풍경이라서 그림이 더욱 반가웠다. 홍화백이 그린 벚꽃과 스레이트 지붕, 촘촘히 적은 담벼락의 글씨에서 그의 기록의 열정도 확인했다.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렸다. 서울에 있다 보니 벚꽃의 개화시기를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 이야기’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화가는 떡 방앗간의 이야기를 벚꽃으로 피워냈다.

작품 속의 행안 방앗간은 명절이나 집안에 대소사가 돌아오면 제일 바빴던 곳이다. 특히 명절에는 떡 방아를 찧느라 방앗간은 분주하기 마련이다. 방앗간 앞에는 고무다라를 놓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머님들로 북적였다.
어릴 적 내 고향, 그 때의 동네방앗간, 구개천의 추억, 우물가의 추억의 조각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그리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 기억들은 조각나 있지만 너무 진한 그리움이다.
  자신이 살았던 고향에 대한 눈물 같은 그리움이 그림을 그리게 되는 힘이라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화가는 고향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할 수 있는 열쇠로 그림을 택했다. 그리고 그 대상 지역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우리가 늘 상 봐왔던 일상이기도 하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고향 부안을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 1 주일이면 2,3일씩 작업을 했다고 한다. “나의고향은 부안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페북에 공개하기도 한다. 화가는 작업 과정에서 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 했고 경제면에서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화가가 이슬만 먹고 사는 것은 아니기에 숙식은 제대로 하는지,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도 꽤 비쌀 텐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그림이나 한 점 얻었으면 하는 데에 관심이 더 쏠린다.
  부안에 사는 문학인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와 함께 숨 쉬는 이들의 작품이 미래의 자산이요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안 지역만이 갖는 시각과 해석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부안의 문학인들과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부안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과 고향에 와서 어렵게 작업하는 화가가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줄 방법은 없을까?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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