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 사유재산권도 없나신불자, 사유재산권도 없나

최근 한 지역농협에서 기괴한 일이 발생했다. 농협에서 김아무개 씨의 통장에서 다른 통장(김씨의 형 통장)으로 2천538만원을 이체했다가 다시 처음 통장으로 되돌려 놓은 것.
이런 일을 겪은 김씨와 그의 형이 노여워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씨는 자신의 돈을 형한테 이체했는데 다시 자신의 통장에 돈이 들어온 것이, 김씨의 형은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돈이 빠져 나간 것이 황당했을 것이다.
김씨는 농협을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고 그의 형은 농협에 당장 돈을 내 놓아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농협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김씨가 농협에 진 빚으로 현재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신용불량 상태라 김씨의 통장은 입금만 가능하고 출금은 막혀 있는 지급정지, 즉 거래정지에 걸려 있다.
그런데 통장을 잃어버려 재발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지급정지가 풀리고 이 때 김씨의 요구로 대체입금을 했다는 게 농협의 주장이다. 채권팀과 창구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돼 일시적으로 혼선이 빚어져 착오를 일으켰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농협 조아무개 채권팀장은 “김씨의 계좌가 지급정지 상태라 김씨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인데 단순 업무착오로 돈이 넘어간 것”이라며 “김씨의 형에게 거래취소 동의를 구할 수도 있지만 이를 동의해줄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김씨가 아무리 신용불량자라고는 하지만 ‘사유재산’을 행사할 권리를 뺏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돈이 나간 것은 농협측의 착오일지 모르지만 그 순간 그 돈은 김씨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분명 농협이 이 돈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면 적어도 김씨의 허락과 자신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왔다가 아무도 모르게 빼앗긴 김씨의 형에게도 동의를 거치거나 그도 아니라면 사유재산을 강제할 법원의 판결을 구했어야 했다.
김씨의 형은 “나도 동생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빌려줬다”며 “통장에 돈이 들어온 것은 맞는데 비었다고 하니 농협에 가서 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꺼림직한 것은 또 있다. 김씨가 농협으로부터 96년4월에 빌린 2천만원이 현재는 5천989만여원이 됐다는 것이다. 도중에 신용보증기금이 원금에 대해 대위변제를 했으니 농협에 남은 것은 이자뿐이다. 거기에 농약미수 원금 450만원도 지금은 이자가 붙어 1010만여원으로 늘어났다. 원금으로 치자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돈이지만 이자까지 합하니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같은 김씨의 부채는 농가부채의 실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구나 김씨는 이 농협에 319만원을 출자했고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농협을 지켜온 조합원이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실정법이나 농협 자체 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민법 쪽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한계희 기자 ghh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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