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오후 2시, 부안예술회관 강당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위한 예산학교 심화반 강좌가 열렸습니다. 올해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난 3월 27일 개정된 조례에 따라 25명의 위원을 50명으로 대폭 늘리고 위원 각 12명씩으로 구성되는 4개 분과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아울러 위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지난 3월 7일 부안읍을 시작으로 백산면, 하서면, 줄포면 등 지역별 강좌와 여성, 청년, 청소년 등 대상별 강좌, 그리고 마지막으로 4월 25일 심화반 강좌 등 총 8회의 예산학교 교육이 진행됐습니다. 그 가운데 ‘좋은예산센터’ 오관영 상임이사가 2시간 동안 진행한 심화반 강좌를 지상중계 합니다. 오 이사의 강의를 기본으로 내용을 보강하고 자료를 덧붙였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말

글 싣는 순서

1. 왜 예산을 봐야 하는가
2. 예산을 보는 방법
3. 주민참여예산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3. 주민참여예산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민들과 소통하다보니 삶의 질이 좋아져…이것이 거버넌스
사업 발굴과 우선순위 확정, 두 가지가 주민참여예산제의 핵심
‘세금을 시민보다 공무원이 더 잘 쓴다’는 신뢰가 밑바탕 돼야
순천 기적의 놀이터, 1년만에 10만 명 아이들이 30만 시간 보내
예산의 소득재분배 기능,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첫걸음을 떼기를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은 지방행정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 놨다. 지방자치 전에는 모든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가 부안군에 시시콜콜 지시를 했고 부안군은 지시에 따라 부지런히 심부름하고 복종해야 했다. 임명직 군수를 정점으로 한 군청조직은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됐다. 그런데 지방자치를 하는 지금은 부안군 스스로 주체가 되어 어떻게 인구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실현할 것인지 기획하고 집행해야 한다. 따라서 부안군이 벌이는 모든 사업은 부안에 살고 있는 주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연 부안군은 어떤 사업을 기획할 때 부안군민에게 타당성과 적합성, 필요성 등을 물어봐야 한다. 군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군민이 어떤 점을 불편해 하는지, 군민들이 원하는 우리 고장의 모습은 어떠한지 의견을 들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당연한 의무이고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정과 시민이 소통하며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버넌스(governance. 협치協治)라고 한다.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정책을 입안하면서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다 보니 시민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더라는 경험을 하게 됐고, 이것이 제도로 굳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됐다. 이 거버넌스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오늘 날의 주민참여예산제가 탄생했다.

주민참여예산제의 기본 구성
거버넌스를 제대로 하려면 공무원들의 자세도 바뀌어야겠지만 시민 의식도 따라줘야 한다. 일테면 부안군이 지금 당장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물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농로포장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 주민들이 ‘좋은 답변’을 내놓을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고민을 안 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웃들과 의논을 해본 적도 없다. 이제는 주민들이 직접 지역 상황을 살펴보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 불편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또 이웃과 의논해서 행정의 질문에 대비한 구체적인 답변을 준비해 둬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주민참여예산제의 첫 번째 과정이다.
주민 스스로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발굴했으면, 그 다음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제안 사업을 열 개건 스무 개건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급성이나 절박성 등을 잘 따져 순번을 정하고, 올해 밀린 사업은 내년이나 내후년에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순위가 밀린 일부 주민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모두 모여 함께 정해야 한다. 이처럼 △사업 발굴과 △우선순위 확정 두 가지가 주민참여예산제의 핵심이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세금을 쓰는 공무원의 자세
우리나라의 고령화와 저출산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14%인데, 현재의 세계 최저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50년 후에는 65세 인구가 38%에 이른다는 예측이 나와 있다. 이미 일부 지방의 면 단위에서는 고령인구가 40%를 넘은 곳도 있으니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고령화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우리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심지어 우리 민족이 300년 후에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민족이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막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는 출산장려금 지원 등 출산율을 높이려는 대책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또 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고교 무상교육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런 정책을 내놓는 이유는 한 가정이 자력으로 그런 큰 부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가가 교육과 의료, 일자리, 주거, 복지 등 상당 부분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시민의 삶은 무너지고 국가도 유지될 수 없다.
앞서 1회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시민 개개인이 번 돈의 32%를 가져가는데,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나라들은 시민이 번 돈의 50% 이상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 돈으로 시민들이 병원비 걱정 안하고 교육비 걱정 안하도록 예산을 집행한다. 결국 우리나라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 그러자면 공무원이 돈을 쓰는 방식에 시민이 동의해야 한다. 한 마디로 ‘시민이 쓸 때보다 공무원이 쓸 때 더 잘 쓴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집행에 대한 시민의 불신이 상당히 높다. 이는 시민의 잘못이 아니다. 공무원이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투명하게 알리려고 하지도, 시민을 애써 참여시키려 하지도, 돈을 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자세도 갖기 않았다. 공무원이 세금을 아껴 쓰고 투명하게 쓰는 모습을 보고 ‘저 정도라면 세금을 더 내도 되겠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했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사례
독일의 환경 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더럽혀지는 놀이터’를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만들었다. 이들은 나무, 모래, 자갈, 돌 같은 오직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만을 이용해 놀이터를 만들고, 어린이들은 그 곳에서 마음껏 뒹굴고 더러워진다. 이 곳 주민들은 그것이 진짜 놀이터의 모습이라고 여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놀이터 출처 / Kinderabenteuerhof Freiburg e.V(프리부르크 어린이 어드벤처호프)

놀이터 자체도 다르지만 만들어지는 과정도 다르다. 기획과 설계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제시할 수 있고, 공사 과정에선 해변에서 가져온 돌과 조개로 놀이터를 직접 꾸밀 수도 있다.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만든 놀이터이니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천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었다. 순천시는 ‘아이들이 다쳐 멍들 권리가 있다’는 모토 아래 주민과 숙의하여 1호부터 4호까지 4개의 놀이터를 만들었다. 순천시는 우선 기획단계에서 아이들이 어떤 놀이터를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하고, 캠프와 워크숍을 열어 아이들이 디자인 작업에 참여케 했다. 또 공사 마무리 과정에서는 어린이 감리단을 구성해 시설에 관한 의견을 모으고 반영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기적의 놀이터는 개장 1년 만에 10만 명의 아이들이 30만 시간을 보내고, 170여 개 시군에서 2000여 명이 벤치마킹을 하러 방문하는 등 한국의 놀이터 문화를 바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순천시는 이후 ‘기적의 도서관’도 만들었는데 놀이터와 도서관을 묶어 ‘기적 투어’라는 관광상품까지 개발했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
지난 5월 1일 문을 연 순천 기적의 놀이터 4호 '올라올라'

주민참여예산은 바로 이런 것을 하자는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사업은 청소년의 얘기를 듣고, 농민을 위한 사업은 농민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순천시에서는 4개의 놀이터를 만들었는데 형태가 모두 다르다. 아이들의 요구가 다르고 자연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결정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곧 정답이다.

2018년 안산시주민참여예산 청소년예산정책 제안대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민참여예산제의 핵심은 숙의민주주의다. ‘주민들끼리 의논해서 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정도 기업도 민주적이지 않고, 마을에서도 목소리 큰 몇 분이 대부분의 사업을 결정한다. 결국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를 끊임없이 훈련할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숙의하고 민주적으로 토론해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훈련하고 경험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자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이다. 바로 주민참여예산의 기대효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업이 좋은 사업일까. 1987년 유엔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핵심은 우리가 지금처럼 먹고 살겠다고 환경을 계속 파괴하거나 자원을 낭비하면 지구가 버틸 수 없고, 지구가 버틸 수 없다면 지구에 세 들어 사는 인간도 살 수 없으며, 그러니 이제는 먹고 사는 일과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컨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해야 인류가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안도 다르지 않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는 큰 자산을 가진 부안군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데 역점을 둔 균형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산부인과가 없으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세금을 들여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산후조리원이나 국공립유치원 같은 시설도 넉넉하게 조성해 육아와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셋째, 장애인과 비장애인, 다문화 이주자들, 어르신과 청소년 등 부안에는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이 차별받거나 소외당하는 일 없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며, 차이가 있다고 배제 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곳이 바로 살기 좋은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주민참여예산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동네 수퍼가 쉽지 않듯이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많은 사람이 경쟁에서 유리하다. 극단적으로 간격이 벌어져서 가난한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공동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안군은 시장에서 벌어진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다시 말해 예산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해야 한다. 부안군이 당장 나서기 어렵고 힘들다면, 우선 부안군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그 첫걸음을 떼기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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