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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꽃93-이곳, 아픔이 부르는 절경과 현실-5

계화도에 있는 매봉의 봉수대를 찾는다. 양지마을에서 올라야 그래도 빨리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른다. 계화산은 높이가 246.3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해수면에서 부터 시작하는 곳이라서 조금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층계가 많아서 쉬엄쉬엄 오르는 것이 좋다. 정상에 서면 고군산군도, 위도, 칠산바다, 변산이 보인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장항제련소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산 정상에서 보는 아름다운 모습은 옛 문헌에도 소개된다. 유형원이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동국여지지』의 「부안현」편에 계화도를 소개한 글이 남아 있다.

현 서북쪽 20 리에 있다. 조수가 밀려나면 걸어서 건널 수 있으며 고기잡이 민호가 많이 산다. -중 략- 서쪽으로 큰 바다를 띠고 있는데 장수(漳水)가 동쪽으로부터 흐르고 조수가 들어온다. 옥구의 여러 산과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늘어서 있어서 참으로 절경이다.

계화산에서 서쪽 바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을 ‘참으로 절경’이라고 했다. 절경을 볼 수 있는 이곳에 계화봉수대가 있다. 점방산 봉수대가 역할을 못하고 폐한 뒤에는 격포의 월고리 봉수대의 봉수를 받았다. 북으로는 만경현의 길고지 봉수로 이어졌다. 『호남읍지』에 따르면 정조 때는 북쪽으로 옥구현 화산(火山)봉수로 연결되었다. 부안의 봉수는 왜구의 침략을 막으려는 뜻에서 만든 봉수이다. 왜구는 격포 앞 바다를 통하여 고군산을 지나면 강화도에 쉽게 닿을 수 있고 한양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이곳 부안의 봉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계화도 중리에 사는 김영길은 1979년 2월에 계화산의 정상인 매봉을 찾는다. 궁안에 사는 친척이 아팠는데 칡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종 사촌과 함께 칡을 캐러 계화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서 운동선수 허벅지만한 칡을 발견하고 캐기 시작했다. 그곳은 봉수대가 무너져 있던 곳이라 돌들을 걷어내느라 하루 종일이 걸리고 저녁 무렵에야 칡이 박혀 있는 땅을 헤집을 수 있었다. 흙을 파들어 가는 한참 후에 지표면 30㎝ 밑층에서 돌칼 하나를 발견했다. 내친 김에 3~4일 정도 땅을 파서 빗살무늬 토기, 화살촉, 숫돌, 옥도끼 등 20여점을 캐냈다. 그 때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호기심도 큰 때였다. 캐낸 유물들을 전주시립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해 신석기 시대 유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계화도의 젊은 청년의 노력으로 이 지역에서 신석기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한국전쟁 전까지 계화도 사람들은 매년 삼일절마다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으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기우제를 지내면 신통하게도 비가 내렸다고 얘기한다. 돌무더기만 남아 훼손 방치된 봉수대를 1995년 새롭게 복원하였으나 고증절차 없이 공사를 해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지는 못했다. 연대위로 올라가는 출입시설도 만들지 않아 올라가는 계단이 없고 연조(아궁이)를 5개가 아니라 한 개만 만들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계화도가 바다의 기능을 잃으면서 계화도를 찾는 손님들도 끊겼다. 한 때 계화도는 횟집, 조개구이 집 등 음식점이 넘쳐났다. 지금은 겨우 2개가 명맥을 잇는다. 바다 가운데 섬이었을 때는 바다가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육지의 섬이 된 셈인데 육지가 가져다주는 것은 현재 없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살점을 다 떼어준 섬이 아프게 우리를 부른다.
유채꽃을 보면서 마을 위의 계화산 중턱 길을 걷는 것은 여유롭고 마냥 행복하다. 양지 마을 앞 쌍이네 집에서 먹는 소라죽도 맛있고 반찬도 참 맛깔스러워 내놓을 만 하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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