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평화의소녀상 건립, 여는 글

신영근 / 부안평화의소녀상 공동대표

안녕하세요.
부안 평화의소녀상 건립 공동대표 신영근, 인사드립니다.
모인 분들을 살펴보니 얼굴이 익은 분들이 많습니다. 환영합니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거나 기억이 가뭇한 독립운동가를 불러내서, 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독립운동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한 인물들이거나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을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음지에서 묵묵히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이름조차 묻혀버린 운동가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잊혀 진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말을 걸고 역사의 현장으로 불러내야겠습니다. 부안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는데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백정기 의사는 부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리들은 잊었는데 정읍에서는 백정기의사 기념관을 짓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망해가던 1909년에 부안 사람들도 총을 들고 의병으로 분연히 일어섰지만 일본군인에 의해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정부에서는 희생당한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했지만 정작 후손들을 찾지 못해서 상패를 정부에서 보관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혹시 이웃 중에 독립운동에 관여한 어른들이 있는지 찾아서 후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도록 기회를 열어 줘야겠습니다.
작년 10월 말부터 부안 평화의소녀상 건립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12월 21일부터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관심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함께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부안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가슴에 소녀상건립의 필요성과 참여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추진위에서는 부안 사람들의 가슴에서 일재잔재 청산과 정의로운 역사세우기라는 강렬한 역사의 불을 확인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힘없는 여성을 정신대로 끌고 간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고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나라로 세워갑시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밝음이 어둠을 이기는 정의로운 부안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읍시다. 소녀상이 결코 외롭지 않도록 찾아와서 손잡아주고 고생하셨노라고 따뜻하게 위로합시다. 감사합니다.

 

부안 평화의소녀상 건립 의미

정재철 / 부안평화의소녀상 자문위원장

부안 평화의소녀상을 준비하면서 받은 질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부안에도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이 있었느냐? 둘째, 평화의 소녀상을 왜 이곳 군청 앞에 세우느냐? 는 질문입니다.
첫째의 답은 부안에도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13세 소녀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2012년에 태평양전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신고하도록 했습니다. 부안에서도 1,335명이 신고했습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사망하거나 이사를 가거나 가족들이 사실을 몰라서 극히 일부만 신고했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무엇으로 끌려갔는지는 넷으로 구분했습니다. 군인, 노무자, 군무원, 정신대였는데요, 정신대라고 기록한 사람은 부안에서 세 사람이었습니다. 세 명 중 2명은 행방불명이었으니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한 사람은 사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더 많았겠지만 신고를 하지 않거나 부러 숨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부안에서는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찍 결혼을 시키거나 여러 방법으로 피하려했지만 일제의 촉수를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둘째는 부안군청 앞에 세우는 이유입니다. 일제는 전쟁터로 끌어갈 부안 사람들을 군청 마당에 집합시켰습니다. 수시로 차에 태워 이곳 본정통을 지나 백산삼거리를 거쳐 신태인 역에서 기차로 국내와 해외의 전쟁터로 끌어갔습니다. 소녀상이 서는 이곳은 당시 관야병원이었고 이 앞은 배차장, 요즘 말로는 터미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은 부안 젊은이들이 끌려갈 때 흘린 눈물과 슬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길입니다. 추진위에서는 많은 논의 끝에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아픔의 현장인 이곳에 소녀상을 세우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소녀상은 단순히 여성의 수난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징병과 징용으로 고통당한 부안 사람들의 눈물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소녀상은 앞으로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외세의 침략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의지와 새로운 역사를 세우겠다는 각오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소리 없이 함께한 여러분들이 부안의 독립운동가입니다. 부안의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존경합니다.
자주대한민국만세, 평화대한민국만세, 민족통일만세.

 

평화의 소녀상과 <총,균,쇠> 그리고 아베

신성호 / 부안평화의소녀상 사무국 재무담당

하루가 지난 지금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의 감격이 마음속에 은은히 자리잡고 있다. 귀농 6년간 지역사회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지만 이번의 감동이 가장 컸다. 큰 깃발로 지역사회의 리더들을 익살스레 위협하는 농악단원의 익살스런 행동, 당당하면서도 슬픔의 목소리를 가진 여학생의 시 낭독, 야외에서도 은은하고 애달픈 선율을 울려 퍼지게 한 오케스트라,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으신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의 한과 결의가 느껴지는 시 낭독, 일제의 잔혹함과 그 잔혹함을 극복한 우리 민족을 표현한 듯한 퍼포먼스는 오히려 거친 아스팔트 무대가 그 효과를 배가시켰다. 나이 마흔 일곱이 되도록 그렇게 가슴 벅찬 마음으로 만세 삼창을 불러본 것은 처음이다. 그런 나의 모든 느낌을 오롯이 표현하기에는 나의 글 솜씨가 너무 서툴다.
비는 내리고 아픈 다리로 일은 할 수 없고 읽다 만 <총.균.쇠>를 오늘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읽는데 예상 밖의 놀라운 내용을 발견했다. 교과서를 통해 백제의 문화와 이민이 일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이러한 내용이 우리나라 중심의 역사일 것이라 생각하고 어렸을 때처럼 100% 신뢰하진 않았다. 그런데 권위 있는 서구인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첫째 일본인이 한국인의 모습이 너무 비슷하고 유전자가 같다는 점, 둘째 언어학적 관점에서 고구려어가 일본어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는 점, 셋째 일본의 고대 조각상이 수염이 덥수룩한 아이누족이 아닌 한인들을 묘사한 점을 근거로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한일 양 국민들은 유년기를 함께 지낸 한 핏줄의 ‘쌍둥이 형제’와 같다. 이제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그들 사이의 오랜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함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라고 했다.
난 한때 일본 아가씨를 좋아해 펜팔을 한 적도 있고 같이 공부하고 여행도 했던 친한 일본인 친구도 있다. 주변의 농부들은 일제 농기계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마음 저 밑바닥엔 일본에 대한 증오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사과가 없어서일 것이다. <총,균,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말한 대로 한 때 우리의 ‘쌍둥이 형제’일 수도 있는 일본에게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증오를 품고 살아야 하는 걸까? 얼마 전 5.18 공수부대 군인이 학살현장에서 생존한 한 광주시민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이 있다. 그 시민은 그 군인에게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하면서 다 용서한다고 하였다. 일본이 극악무도한 짓을 많이 했지만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근로자들도 진정한 사과를 하면 다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국가간 관계를 정치에 이용하는 정치인들과 일부 극우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은 모든 인류와 사이 좋게 지내길 원할 것이다. 실천이 어려울 뿐 결론은 간단해 보인다.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런 바람을 얘기로만 해왔다. 이번엔 달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겠지만 아베 트위터에 메시지를 남겼다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한국의 일제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바란다!” 라고……

 

평화를 기리며, 각오를 다지며

백경진 / 부안여고 역사문화동아리 얼아로미 부장

안녕하세요. 부안여자고등학교 역사문화동아리 ‘얼아로미’의 부장 백경진입니다.
오늘 부안의 군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의 평화를 꿈꾸는 귀한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피맺힌 아픔을 겪으신 할머님들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우리 고장 부안에 건립하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기까지 앞에서 뛰며 헌신적으로 일을 추진해 오신 여러 어르신들, 그리고 진심 어린 성금과 응원으로 함께 해 주신 부안군민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이야기를 잠깐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여자가, 그리고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할머니의 한맺힌 말씀입니다. 재작년에 100세를 맞으신 할머니께 “올해 소원이 뭐예요?” 여쭸더니 할머니는 “내가 죽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죄를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해방 후에도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오셨지만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곤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아프고 숭고한 일생은 우리에게 뼈아픈 반성과 각오를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민족에게 그토록 모진 악행을 쏟아붓은 일본은 지금까지도 단 한마디 사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운가요? 그 한마디면 된다는데도 끝내 안할 건가요?
반성은커녕 오히려 역사왜곡에 혈안이 된 저들을 보며 우리는 각오합니다. “너희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가 반성하도록 해주마!” 오늘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이 자리는 그런 각오와 결의를 다지는 또다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간절히 평화를 바라는 소녀상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아픔을 극복한 소녀의 단호한 입매를 보십시오. 내일을 향한 단호한 결심으로 굳게 움켜쥔 저 주먹을 보십시오.
오늘 세워지는 저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과거를 돌아보고 새 각오를 다지기 위한 원동력이, 전쟁을 모르는 미래 세대에게는 평화와 인권 교육의 교과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와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가 여성들의 성폭력과 세계의 인권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평화가 실현되고 모든 이의 인권이 온전하게 존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귀한 역사의 현장에 부안의 청소년을 대신하여 서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낍니다. 아직 저희는 어리지만 오늘의 일을 마음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안의 어른들이 보여주신 큰 용기와 헌신을 마음에 새기며 지역과 나라의 역사를 더욱 힘껏 지켜나가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피맺힌 말씀입니다. 오늘처럼 부안의 어른들과 저희 청소년들이 역사를 기억하고자 힘쓴다면 우리 민족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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