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는 따뜻한 사람 되겠다’ 다짐

<톨스토이 단편선>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게 되었을 때, 나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고민이 많았다. 왜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지, 책을 읽고 늘 생각을 하며 독후감을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떨 땐 포기해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과 책을 읽고 생각에 빠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답을 얻은 것 같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미래의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진다는 게 아닐까? 우리가 알고 접하는 게 많을수록 교양이 쌓이고 사회를 더 잘 알게 된다. 그렇듯이 남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또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다짐을 하고 반성을 한다. 그 반성 속에서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고 느끼게 된다.

내 생각에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 인간이 사랑으로 살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으로만 산다면 그것은 냉전 속에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던가. 나도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길 바라기 보다는 사랑을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이든 많이 소유하기를 원한다. 필요 이상의 것이라도 나중에 불필요해져서 버릴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욕심을 부리기 일쑤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흠이라는 농부이다. 바흠은 싼값으로 살 수 있는 기름진 땅을 찾다가 바시키르인의 땅을 알게 되었다. 1천루블에 하루 종일 걸어 얻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농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만 죽고 말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는 마음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고작 2m10cm,그의 무덤뿐이었다.

나도 욕심이 참 많은 편이다. 어렸을 때, 친척 어른이 스티커며 수첩 같은 것들을 많이 주신 적이 있다. 그냥 한두 개 가지고 있었다면 소중히 여겼을 테지만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아까운 줄 모르고 막 써 버린 기억이 있다. 욕심이란 그런 것이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방탕하게 써 댈 뿐이다. 아니면, 지나치게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서 많이 가질수록 그것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고 소유하지 않을 때 오히려 자유롭고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