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을 세우기 전 지신밟기 하고 있는 굿패 사진/ 김종철 기자

‘개양(開洋)할미 바다지킴이’와 ‘변산신령 산들지킴이’

 수천 년 동안 갯벌이었던 그 곳, 해창벌에 다시 장승이 우뚝 섰다.
지난 2일 새만금 개발의 허구성에 염증을 느낀 부안 사람 100여명이 1991년 물막이 공사와 함께 뭍으로 변해버린 해창벌에 모여 바다와 갯벌을 지켜려는 염원을 모아 장승 2기를 추가로 세웠다.
이날 세운 장승은 ‘개양(開洋)할미바다지킴이’와 ‘변산신령산들지킴이’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안 앞바다 칠산어장을 수호하는 개양할미와 부안 평야를 지켜온 변산 산신령을 형상화했다.
이 장승들은 일부 부안 사람들이 올해 초 목재를 구해 지난 달 23~24일 양일간 미리 조각해 두었었다.

장승 밑그림
장승을 세우기 일주일 전 미리 깍고 있는 유재흠 씨
장승을 세울때 쓸 새끼를 꼬고 있는 박형진 씨 (가운데)와 신기한듯 보고 있는 꼬마 숙녀.

이날 모인 부안 사람들은 먼저 풍물패를 앞세워 한바탕 지신밟기를 한 뒤, 십 수 명이 달려들어 본격적으로 장승을 세우는 장관을 연출했다.
이어 이백연(변산면 도청리) 씨가 고천문을 낭독하고 각 지역별로 나와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등 고천제를 올리는 순으로 진행됐다.

부안사람들이 개양할미 바다지킴이 장승을 세우고 있다.
장승앞에서 고천문을 낭독하고 있는 이백연 씨
고천문 낭독이 끝난 뒤 장승에 절을 올리는 부안사람들

문규현 신부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새만금 간척사업은 시작부터 자연에 대한 무지와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사업”이라고 규정하며 “바다는 황폐해졌고 고기들은 산란처를 잃었으며 조개와 백합, 동죽은 폐사하고 갯벌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고 탄식했다.
문 신부는 이어 “새만금을 생명의 땅으로 치유하는 길은 물길을 완전히 개방해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 뿐”이라고 단언하며 “오늘 우리는 여기에 잠들어 있는 생명과 평화의 매향목을 깨워 행복이 넘치는 새만금으로 다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새만금도민회의 고영조 공동대표는 “새만금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로 (부안과 전북지역) 지도자들의 철학 없음과 지역 주민들의 방관적 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초래됐다”고 진단하면서 “군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수유통을 비롯한 대안을 찾아 한시 바삐 새만금 갯벌을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부안 사람들은 준비된 막걸리와 안주 등을 펼쳐놓고 정담을 주고받으며 이날 오후 늦게까지 해창벌을 지켰다. 이들은 또 매년 장승을 추가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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