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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꽃85-서쪽 숲 아래 심고정에서 활을 쏘다

기억났다. 과녁은 세 개가 있었고 옆에는 삼색(빨강,노랑,파랑)의 기다란 말풍선이 바람을 가늠하느라 춤추듯 흔들렸다. 성황산을 오를 때면 서림공원 밑으로 보이던 활터, 심고정이다. 쏜 화살의 결과는 아이가 기를 흔드는 방법으로 알렸다. 아이가 위험할 텐데 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땐가는 가봐야지 하다가 2012년 5월에 들러 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알만한 분들이고 이야기를 들으며 심고정에서 활 쏘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는 느낌을 가졌다.
어느 날 지나다 보니 심고정의 정자만 남고 활터가 사라졌다. 2012년도 말에 행안면 진동리로 심고정을 옮겼다고 한다. 나중에는 정자마저 사라지고 집터만 달랑 남았다. 주변 분들에게 물으니 포클레인으로 무너뜨렸다고 들었다. 이 정도면 걸려지어 짜 맞출 수도 있고,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성황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쉼터로 이용될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지금도 이곳을 지나다 보면 ‘탁 탁’하는 과녁에 화살 맞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심고정(審固亭)은 1807년(순조 7년)에 부안읍 동중리에 세워졌다. 지금으로부터 212년 전이다. 관덕정(觀德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사라진다. 1892년(고종29년)에 성황산 아래에 초가로 사정(射亭)을 새로 지어 운영하다가 1927년(1929년이라는 설도 있다)에 기금을 마련하여 건축하고 심고정이라 하였다. 그러나 순탄하지 않았던 것은 일제의 신사 건립으로 1943년에 철거되었고 건축재가 부안읍 사무소의 가건물로 이용되었다. 해방 후 1966년에 재 건립 된다.(한국매일뉴스, 2016년 12월)
그렇다면 심고(審固)란 무슨 뜻 일까?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의미부터 옛 제도를 본받는다는 의미 등으로 넓게 쓰인다. 이런 정신의 밑바탕에 지은 활터가 심고정이다. 그리고 예부터 남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는 반드시 구(彀)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구’를 활을 당기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과녁에 맞추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자신에 맞는 당김이 필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민족은 활을 중시하여 먼 거리에서 적을 제압하는 장병전술(長兵戰術)이 중심을 이루었다. 창, 칼로 하는 백병전의 단병전술(短兵戰術)은 보조적인 역할이었다. 이에 비해 왜구는 칼을 중시하여 근접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단별전술을 중시했다.
활쏘기는 곧 육예(六藝)의 하나였다. 여기서 육예는 예(禮:예의), 악(樂:음악), 사(射:활쏘기), 어(御:말타기), 서(書:글쓰기), 수(數:수학)를 말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글 읽기에만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예를 익히고 기술을 다투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활쏘는 선비’라는 자부심도 상당했고, 이 활쏘기는 오랜 수련과 강한 체력이 필요했다.
1929년에 편찬된 심고정 사안(射案)에 보니, 신입회비는 1원이고 집궁례(執弓禮: 처음 활을 잡는 신입의 통과의례 같은 것)는 형편에 따라 10원이나 5원으로 규례를 정했다. 당시 활터 주변의 서림(西林)을 상상할 수 있는 기록도 전한다.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나무, 오래된 돌과 차가운 냇물은 심고정과 함께 영원히 전하리라는 희망을 남긴다. 그러나 이런 염원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파괴되었다. 그렇다고 해방 후에 훼손을 멈춘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옛 것은 낡고 나쁜 것이니 없애고, 편리하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어떤 확신이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관리하기가 어려운 것들은 아예 없애버리자는 행정편의주의가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작은 골목 하나, 선인들의 흔적 하나라도 중시하는 역사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를 가꾸고 간직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자들에 의해 부안의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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