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출판제작국장 시절의 모습. 김석성은 혼자 있을땐 이처럼 곧잘 깊은생각에 잠겼다. / 본문 210 페이지

동문 김진배 “그는 갔지만 그의 소망은 이루어질 것”
부인을 비롯 생전 교유했던 인사 글 10여 편도 실려

“비록 금의환향이 아니더라도 나는 좋다. / 실의 낙향이 아니어도 언젠간 고향에 가야지.” (1971. 김석성)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기자로, 부안여중고 이사장으로, 부안의 문화공간 제안자로 활동했던 고 김석성 선생의 일생을 그린 ‘김석성 평전’(김인기 저, 에디터 刊)이 세상에 나왔다.
1935년 부안읍 선은리에서 태어난 김석성은 1954년 연세대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하고 1958년 모교인 부안농고 교사로 2년간 근무하다가 1960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기자로 언론계 첫발을 뗐다.
이후 1965년 중앙일보로 옮겨 사회부 차장과 부장을 거쳐, 1980년 시카고 지사장과 1984년 뉴욕 지사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는 도서출판 ‘에디터’를 창립하고 부안 출신 작가 최기인의 ‘서울똠방’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가 사랑한 여성’ 등을 출판했다.
김석성은 2003년 고향으로 내려와 부안여중고 재단인 낭주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해 기숙사인 우정학사를 개관하고 학교 숲 가꾸기 사업과 정보문화관 준공, 명사 초청 특강 등을 통해 교육 환경 개선에 매진한다.
또 신석성문학관, 부안 바둑공원, 매창 시비 등 부안의 문화적 자산을 물리적 공간으로 표현하는 일을 제안해 실현하기도 했다.
김석성은 2014년 1월 7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 유년 시절 뛰놀던 고향 마을의 동산에 안겼다.
김석성의 고교 동문이자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함께 하숙을 하는 등 한평생 그의 진면목을 지켜본 김진배 전 의원은 책 머리에 “팔십 중반을 넘어선 이제야 나는 김석성 선생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언론의 자유를 향한 끈질긴 집념, 그리고 고향 부안의 교육과 문화 창조를 위한 치밀한 설계와 불같은 실천력을 공감하기에 이르렀다”면서 “그는 갔지만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인간의 육신은 가도 그 의지는 생사를 초월하여 찬란한 역사를 창조한 것을 우리는 안다”라고 추모했다.
아울러 고인의 선후배와 동료 등으로 구성된 편집위원들은 책 말미에 “우리는 그의 생전에는 감쪽같이 숨겨 온 그의 ‘뜻 깊은 성취’를 알아보고 뒤늦게 크게 감동받았다. 이 감동을 땅에 묻힌 유물을 발굴하듯 수습 정리하여 김석성의 자취를 반드시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마음을 같이 했다”고 평전 발간 이유를 설명하며 “그는 늘 자신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공동체를 책임진 사람처럼 살았다. (중략) 그는 사진이 하고자 한 ‘할 일’을 성취한 사람이다. 자신을 먹이고 키운 이 땅에 빚진 것을 다 갚으려 한 사람이다”라고 기억했다.

김석성 평전

이 책에는 고인의 부인인 권혜숙 씨의 회고 글 ‘동행’을 비롯해 김진배 전 의원의 ‘우정 60년’, 정재철 <부안이야기> 이사의 ‘청년 김석성 선생’ 등 10여 편의 글도 함께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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