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중심 지역공동체 변화 조짐

지난 7월 전북여성단체연합은 ‘부안반핵운동의 여성활동가들’을 ‘전북여성운동의 디딤돌’로 선정했다. 부안 여성들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외부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 받은 것이다. 이 단체 오수연 사무국장은 “보수적인 농어촌 지역에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홍보단, 노래패, 의정참여단을 만들고 특정 지역 현안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집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여성들이 싸움에 주체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핵 덕택(?)’인 듯 싶다. 김명희씨(상서중 교사)는 “핵으로 인해 아이들이 죽어가는 사진을 보고 생각이 바뀌는 것을 많이 봤다.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데 논리가 필요 없다. 환경과 평화 문제는 애초부터 남성보다는 여성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며 여성과 반핵정서와의 연계고리를 ‘모성’에서 찾았다.
여기에 좀 더 일반적인 해석으로 “여성들이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생활을 하느라 눈치문화에 젖은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사표현이 자유롭고 활동반경이 넓을 수 있다”는 시각이 보태지기도 한다. 부안초등학교 운영위원회 양수정 부위원장은 “남자들은 폼 잡고 큰 소리 치기 바쁜데 여자들은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며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반핵투쟁에서 여성들의 활동과 역할은 ‘아주 구체적이고도 긴요한 것’이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작년 11월경부터 올해 2·14 주민투표 때까지 반핵 선전활동을 주도한 ‘아줌마 홍보단’의 이경미씨는 이에 대해 “특히 야간 가가호호 방문 홍보활동은 ‘아줌마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자들은 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이게 옳다’ 하면 순수하게 실천하는 면이 있다. 낮은 일 궂은 일을 찾아 서슴없이 밀고 나갔다”고 평가했다.
아줌마 홍보단과 비슷한 시점에 출범한 노래패 ‘노랑 고무신’의 이오순씨는 “작년에 정부와 대화기구가 결렬되고 이것 저것 다 해봐도 정부가 여전히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을 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주도한 이들 두 팀의 탄생은 작년 말 주민투표 실시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싸움이 장기화 될 것에 대한 우려 등이 뒤섞인 다소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 깊은 점은 반핵투쟁을 계기로 여성들이 지역공동체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지역사회 공공영역에 여성들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아줌마 홍보단과 연계를 갖고 있는 ‘의정감시단’이 대표적이다. 의정감시단은 군의회 등원 재개 당시 예산심사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촛불집회에 나와 발표하기도 했다. 13명 전원 남성 일색의 보수적인 군의회에 대한 최초의 주민 감시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여성들의 반핵열기를 확대된 형태의 장기적인 사회참여로 전환시키려는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노랑고무신의 경우 회원 모두 주부로서의 악조건과 열악한 창작 여건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방안과 향후 연대사업 계획을 두고 내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성활동가는 반핵투쟁의 의미에 대해 “원래 여성들 내부에 무궁하고 다양한 힘들이 있는데 그것을 표현하고 인정받을 계기가 없었다”며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여성 스스로의 자각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사회가 여성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녀들의 변화가 일시적인 참여 열기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서복원 기자 bwsuh@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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