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김민수 씨 가족  / 사진 김종철 기자

부안군 인구를 구성하는 구성인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다문화 가정이다.
2017년 기준 부안군에는 451호의 다문화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낯선 나라에 와 가정을 이루고 불편한 소통을 견뎌가며 이들 가정이 출생한 아이의 수는 1155명에 달한다.
인구절벽에 다가선 부안군의 또 다른 희망인 다문화가정의 속 깊은 사연과 설 명절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줄포로 향했다.
줄포로 정한 이유는 이곳에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정착해 부안군내 노래자랑을 휩쓸고 있다는 소문의 여성을 만나기 위해서다.
줄포에서는 불렀다 하면 1등이라 적수가 없어 부안읍 시장에서 열린 가요제에 도전해 2회 연속 2등을 차지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는 바로 필리핀에서 온 에리카(32세) 씨다.
첫 만남의 인사를 뒤로 미루고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왔다는 것이 사실인지부터 물었다.
“필리핀, 거기서 노래 불러. 노래 좋아” 아직은 서툰 한국어 실력 탓에 단어들을 붙여 답한다.
그녀의 답변으로 생각해보니 고향이 필리핀이니 동남아가 맞고 동네를 돌며 노래를 불렀다면 순회도 맞고 실력이야 좋은 것이 확인됐으니 공연이라 할 만 하다.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동남아 순회공연이다.
늦은 인사를 건네기 무섭게 “아 거기서도 노래 잘 한다고 소문이 났더라고” 시어머니 박영이 여사가 틀림없다고 거든다.

갓 태어난 딸 다은이를 안고 있는 에리카 씨와 시어머니 이명희 여사 / 사진 김종철 기자

올해로 77세를 맞는 박 여사에게 에리카 씨는 미안한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다.
줄포에서 한신샷쉬 집을 운영하는 큰아들 김민수(49세) 씨에게는 1남 2녀의 자식이 있었다. 서울에서 전처를 만나 자식을 낳고 살던 중 이혼을 했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고향 부안으로 내려왔다.
일찍 홀로되신 어머니에게 도움보다는 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와 아이들의 이해에 힘입어 국제결혼을 결심한다.
한 번의 결혼과 3명의 자녀를 둔 결점을 이해하고 결혼 후 넘어야 할 수많은 고비를 함께 할 반려자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라 여기고 운명에 기댄 체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그는 당시를 기억한다.
에리카 씨가 기억하는 남편 김민수 씨의 첫 인상이 궁금해 물었다.
“처음 좋았어. 핸섬. 필리핀 말로 뽀기. 예뻤다” 칭찬일색의 답변이 돌아온다. 남편도 같은 질문에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저도 똑같이 콩깍지가 씌었는지 처음 봤을 때부터 딱 이 사람이다 했죠”
이들 콩깍지 부부는 6년 전에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시어머니와 품어야 할 자식이 있는한국으로 와 살림을 꾸렸다.
“처음 왔을 때 말도 안통하고 깝깝해서 어찌허꺼나 했는데 찌개 끓이고 국 끓이는 것을 보여주고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 100점은 아녀도 80점짜리 맛은 내더라고, 먼디서 왔는디 그려 이만하면 됐다 싶었지” 시어머니 박 여사의 평가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하나를 가르치면 열까지는 아니어도 대여섯은 족히 알더라고. 똑똑 혀” 이 여사가 살림을 가르쳐 준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통장이며 가계부며 살림살이 곳간열쇠를 죄다 넘겨준 이유다.
거기에 다른 젊은 주부와 달리 큰 마트에 가도 반찬거리 외에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도 박 여사 마음에 들었다.
에리카 씨의 이런 장점들은 경제사정이 어려운 가정 속에서 위로 다섯, 아래로 두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라며 스스로 익히고 키운 자신만의 생존 능력 중 하나다.

웃는 모습이 엄마를 닮은 귀염둥이  현진이 / 사진 김종철 기자

한국 정착 1년이 채 못돼 아들 현진이(6세)를 낳았다. 줄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현진이는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이 레고 장난감을 좋아한다.
“현진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어디에 계신지 알아?” 마침 비행기 레고 장난감을 든 아들은 2살 때 갔다 온 것을 기억한다는 듯이 “필리핀요”라고 대답한다.
누가 알려 줬거나 주위에서 하는 말을 주워 들었겠지만 현진이게 필리핀은 다른 나라가 아닌 엄마가 살던 외갓집이다.
에리카 씨는 올해 1월 15일 두 번째 자녀인 딸 다은이를 출산했다.
출산이 힘들었다는 그녀는 아들과 딸을 잘 키우기 위해 셋째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딸 세 명, 아들 두 명, 벌써 다섯 명, 더 안 낳아도 괜찮아”라며 그녀를 엄마라 부르며 따르는 전 부인의 세 자녀들 또한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였음을 표현했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그녀의 애창곡은 ‘내 나이가 어때서’다 그녀가 이 곡을 좋아하게 된 것이 흥겨운 멜로디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다문화가정이 받고 있는 남편과의 나이 차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외침으로 들린다.
곡의 가사처럼 지금 그녀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남편과 가족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한국음식에 빠져있다.
고기종류의 음식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족발, 통닭 등 배달 음식은 물론이고 삼겹살, 돼지갈비 등 한국식 고기요리는 가릴 것이 없이 즐겨 먹는다고 한다. 특히 여름에 주로 먹는 삼계탕을 너무 좋아해 겨울이 빨리가길 재촉하기도 한다.
“가족 많으면 좋아. 명절에 맛있는 음식 많이 해”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설 명절과 같이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아직까지 명절 준비는 시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지만 동태전이며 꼬쟁이며 명절 음식도 곧잘 해낸다고 시어머니의 며느리 자랑도 더해진다.
에리카 씨는 한국이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듯이 필리핀도 들깨로 만든 강정과 같은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은 새해에 손님을 맞기 위해 청소를 하지만, 필리핀은 청소를 하지 않는다. 복도 함께 쓸려나간다는 속담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남편의 동생내외를 맞이하기 위해 한국식으로 청소를 열심히 한다고 웃음지어 말한다.
어릴 적 호주머니에 동전을 넣고 소리 나도록 뛰면 소리의 크기만큼 복이 커진다고 해 아이들과 높이뛰기를 했던 추억도 내놓는다.
행복해 보이는 에리카 씨 부부에게는 풀어야 할 몇 가지의 고민거리가 있다.
첫째는 아직 에리카 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것이다. 까다로운 국적 취득 절차도 있지만 어머니와 부인, 다섯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 김민수 씨가 쉽게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이유가 더해진다. 김 씨는 다문화지원센터 같은 행정기관에서 편의를 제공 받아 고민을 해결하길 기대하고 있다.
둘째는 에리카 씨의 산후조리 보조원으로 필리핀에 있는 처제를 초청하길 희망하고 있지만 초청 최소인원 부족이라는 이유로 마냥 기다리고 있다며 시일을 앞당길 방법을 찾아 고심하고 있다.
셋째는 최근 다문화가정 출산용품지원이 보류된 것이 아쉽다며 행정의 적극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과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를 따라 나선 여섯 살배기 현진이의 모습과 함께 에리카 씨가 던진 말 한마디가 생각난다. “필리핀도 새해, 한국도 새해, 문화는 달라도 필리핀도 한국도 모두 사람 살아” 다문화 가정이라 분리해 특별한 설 분위기를 기대한 것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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