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시장이나 나와 봐야 명절 분위기를 느끼죠”
제수용품으로 가득 담긴 검정비닐 봉투을 두 손 가득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봉덕리 주공아파트에 사는 김 아무개(47세) 주부의 말이다.
그녀가 부안상설시장에서 명절 장을 혼자서 보기 시작한 것은 몇 해 되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시던 시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녀의 장보기 순서는 시어머니가 일러준 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H상회’에 들러 수리미(오징어)를 사고, 동태포를 뜨고, 홍어에, 조기에, 고등어 몇 마리를 산다. 시아버니 함자를 대고 “상서에서 왔어요. 아시죠”라는 말을 해야만 안심이 된다. 상서는 그녀의 시댁이 있는 곳이다.
시어머니가 그랬다. 몇 십 년 단골이니까 그렇게 이름을 대면 둘리지는 않는다고

그녀 보다 앞서 온 아주머니는 김제에서 왔다. “내가 왜 차타고 부안까지 오것어요. 김제에서도 여기 많이들 와요. 여기가 물건이 좋응게. 생선 하나만 봐도 훨썩 좋지요”라며 좌판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큼지막한 농어 한 마리를 봉투에 담아간다.
남들의 흥정장면을 구경하며 포를 뜨고 손실하는 시간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손해라는 것도 배워뒀기에 재빨리 앞집 식품가게로 넘어간다. 미나리 몇 단을 집고 콩나물과 고사리, 도토리 묵과 두부, 그리고 몇 가지의 채소거리를 산다.
이곳에서도 상서에서 왔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아버지는 어디 아프신가. 요즘 통 안 보이시는 것 같던데”라는 주인아주머니 말에 믿음이 생기면서 깍아 달라고 해볼까했던 작은 용기는 꿀꺽하고 “좀 나아지셨어요”라고 답한다.
다시 찾은 H상회 아저씨는 “찌게거리랑 해서 좀 더 넣었승게 명절 잘 쇠야”라며 대여섯 개의 비닐봉투를 가르킨다. 얼마나 더 넣어주셨는지는 집에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덤 좀 달라고 해서 받아 온 거예요”라는 너스레를 떨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채소와 생선만 샀는데도 7-8개의 봉투가 양손 가득하다. 정육점을 가기에 앞서 남편이 오기로 한 시간을 확인 한 후 팥죽집을 갈까 하다 시장 안에 새로 생긴 꽈배기 집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기로 한다.

힘센 남편이 오면 정육점을 들러 국거리 두어 근과 저녁에 재워둘 돼지갈비를 사고 청과시장에 들러 귤 한 상자를 산다. 사과나 배는 들어온 선물이 있어 따로 사지 않았다. 잊지 않고 떡 방앗간을 들러 맞춰둔 가래떡을 찾아 집으로 향한다. 모두다 전통시장 안에서 이뤄진 일이다. 차에 오르는 그녀가 한마디 거든다. “마트에서는 다 살수 없어요. 물건이야 다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재미와 인심, 사람 사는 모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어요.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시장에만 오면 풍성한 마음이 생겨요”
지금의 시장 안에서는 10년 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안에서도 바뀌어 가는 고객의 요구에 맞춘 물건을 파는 상점이 늘고 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식구를 위해서 갈비를 재우는 일이 쉽나요. 배도 갈아 넣어야지 양파도 갈아 넣어야지 손이 한두 번 가는 게 아니예요. 특히나 할머니들은 더욱 하기 힘들죠” 생고기 판매에 그치지 않고 부안뽕이 들어간 양념으로 재워진 갈비를 파는 정육점 주인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도 시장에서 펼쳐진다.
“요즘 떡 드셔 보셨나요?” 먹기 좋게 포장된 떡, 온갖 잡곡이 들어간 떡 심지어 이름까지 새겨나오는 떡이 있다. 맛을 넘어 과학으로 발전중이다. 뿐만 아니라 설 명절에는 얇게 썰린 떡국 떡도 판매한다.
이 같은 상인들의 다양한 도전과 더불어 부안상설시장은 지난 28일부터 사은품과 경품지급, 시장 미션임파서블, 2019 떡국 나눔 행사 등 독특한 설 행사를 펼쳐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상인들의 경력으로 시장이 풍성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 전통시장의 활기찬 모습이 날로 바래져 가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이 꽁꽁 닫힌 탓도 있겠지만 전국 어디에나 들어선 대형할인점, 인터넷을 활용한 온라인 쇼핑몰 등에게 많은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올해 설 명절에는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넓은 주차장이 막히고 시장 안 거리 곳곳이 흥정하는 소리와 웃음소리로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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