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지으랴 팥죽 쑤랴 힘들지만 시장에만 나오면 재미져” 풍년팥죽은 이름만큼이나 웃음도 풍년이다.
“소문 듣고 취재 왔습니다”라는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취재할게 뭐 있다고 여길 와 하하하하” 쑥스러워 하던 첫 대면은 환한 미소로 바뀐다.
풍년팥죽 김재순(61) 씨는 올해로 5년차 팥죽집을 운영 중이다.
대부분의 시장상인들이 20년, 30년 하는 경력을 갖고 있어 5년은 비교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녀가 뽐내는 솜씨는 30년에 견줄만 하다.
“남의 집 식당에서 일 지독허게 혔지, 퇴근시간이 다됐어도 남은 일이 있으면 다 해야 직성이 풀렸어. 늦게 온다. 애들 안 돌본다. 남편 타박도 많았지만 성격이 그런 것을 어떻게 혀”
자기이름으로 가게를 열지 않았을 뿐 식당에서 남의 일 한 햇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다. 그런 경험과 함께 뭐든 쉽게 따라 배우는 재주가 더해져 그간 슬쩍슬쩍 배워둔 요리 실력은 못하는 반찬, 못하는 음식이 없는 만능 요리사로 만들었다. “말만하면 뚝딱뚝딱 다 만들어 낼 수 있지” 자신 있는 목소리에 경험이 묻어있다.
“남편이 농사를 지어. 그것도 팥 농사를. 내가 지으라고 혔지. 팥죽장사하게” 그녀는 국산 팥만을 고집한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지은 팥만을 쓴다.
국산하고 중국산하고 섞인 것도 있을 수 있고 농약을 많이 친 것도 있을 수 있어 신뢰가 안 간다는 것이 고집을 부리는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평생을 함께해 온 남편의 농사 실력을 믿기 때문에 변함없는 팥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쒀 보면 알고 먹어보면 더 잘 알어. 진짠지 가짠지”
팥죽이 가장 쉬워보여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가장 어려운 음식이 됐다고 한다. 팥죽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한번 낸 맛을 계속해서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팥을 얼마나 불리고 어떻게 삶아 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죽을 쑬 때의 불의 세기, 물의 양, 삶아진 정도에 따른 쑤는 시간에 대한 자신만의 감각이 없으면 죽 맛이 그날그날 달라진다고 한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은 그때 그 맛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인데 올 때마다 맛이 다르면 안  되지. 유식헌 말로 맛의 기억을 찾아준다고 해야 할까. 하하하하” 웃음 속에 그녀만의 음식 철학이 세어 나온다.
지난해 12월 열린 와글와글 시장가요제 덕에 전주, 김제, 정읍, 신태인 할 것 없이 많은 외지 사람들이 풍년팥죽집을 찾아온다고 한다.
가요제 사회자인 개그맨 황기순 씨가 이 팥죽이 맛있다고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바람에 유명세를 더하게 됐단다.
“유명해져서 좋긴 한데 장소가 좁아 돌려보내는 손님이 많아져 미안할 지경이다”는 그녀는 가게를 확장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손자가 다섯 명이 될 정도로 자식들도 다 장성해서 잘 살고 있는데 더 벌어서 뭐하겠냐”고 반문한다.
“남편하고 나, 내외간 늙어서 더 이상 일 못할 때, 그때 쓸 만큼만 있으면 되지”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욕심 없는 답변이다.
취재 중 낯선이가 옆 가게 모자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 잠깐만 기다리라며 옆 가게로 달려간다. 이내 흥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줌마 이 파란모자는 얼마여? 주인도 아닌데 어떻게 가격을 아는가?”
“옆집, 앞집이 다 형님이고 언니에 동생이라 어지간한 것은 다 아니까 판다고 나서는 것이지요. 이것은 만원, 이것은 만오천원 주시면 되요”
이러쿵저러쿵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고 만 원짜리 한 장을 앞치마 주머니에 꾸겨 넣으며 입가에 미소를 띈 채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앉는다.
“깎으려고 하면 흥정이지만 안 깎으면 덤이 가는 곳이 시장이다”며 “내 팥죽은 작다고 하면 더 주고, 맛있다고 하면 더 많이 주고, 싸달라고 하면 둘이 먹어도 될 만큼 넉넉히 싸준다”고 한다. 다시 찾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귀띔한다.
풍년 팥죽 메뉴는 ‘팥죽, 새알팥죽, 보리밥, 바지락칼국수’ 4가지 음식에 그친다. 하지만 메뉴에 없는 밑반찬은 계절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시장에서 나오는 제철 나물을 무쳐 내기도 하고 겉절이, 묵은지, 생채지, 파김치 등 솜씨 좋은 그녀의 시골 맛도 느낄 수 있다.
오후 5시, 인터뷰가 끝날 무렵 보리밥 한 그릇을 내놓는다.
“일부러 찾아왔는데 밥한 끼 안주면 내가 미안하니까 이른 저녁이다 하고 한술 뜨셔. 생채지에 상추무침 넣고 강된장에 착착 비벼서 먹어봐. 다들 이 맛에 여길 찾아오니까. 하하하하”
그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상설시장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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